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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대북 전단 살포를 꼭 법으로 막아야 하나

파이낸셜뉴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6.05 15:21

수정 2020.06.05 15:21

북한이 탈북자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 중단을 요구하는 대남 압박에 나섰다. 4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담화문을 통해 개성공단을 철거하거나 9·19 남북군사합의를 파기하겠다고 엄포를 놓으면서다. 그러자 정부는 “대북 삐라는 백해무익”(청와대)이라는 반응과 함께 전단 살포 금지법을 추진 중임을 확인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굴종적 북한 눈치 보기”라는 비판과 함께 해묵은 남남갈등이 재연되는 형국이다.

북한이 전단 살포를 꼬투리 삼아 남북군사합의를 깨겠다는 건 여러모로 어불성설이다. 무엇보다 북측 스스로 이미 이 합의를 지속적으로 위반해 왔다는 점에서 가당찮다.
수차례 탄도 미사일 발사로 유엔 결의를 어겨온 건 차치하더라도 그렇다. 서해 완충 수역에서 포사격을 한다거나, 비무장지대 감시초소(GP) 총격 도발로 남북군사합의를 사문화하다시피 한 쪽이 북한 당국이어서다.

김 부부장은 이날 “쓰레기들(탈북자들)의 광대놀음을 저지시킬 법이라도 만들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전단 살포가 군사적 적대행위라는 북측의 주장은 근거 자체가 박약하다. 9·19 군사합의서에 비행을 금지하는 ‘공중 완충구역’ 조항이 있지만, 이 같은 당국 간 합의를 무기도 아닌, 민간이 날린 풍선에 원용하는 건 비약적 논리다. 물론 전단 살포로 꽉 막힌 남북관계가 더 꼬일 수 있다는 정부의 우려도 일면 이해된다. 5일 접경지역시장군수협의회의 전단 살포 중단 건의도 같은 배경일 게다. 지난 2014년 북측이 삐라를 실은 풍선에 고사총을 쏴 긴장이 고조된 적도 있어서다.

그럼에도 전단 살포를 법으로 막는 게 능사일까. 우선 표현의 자유 침해로 위헌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더욱이 전단은 현실적으로 북한이란 극단적 ‘폐쇄회로 사회’에 바깥세상의 진실을 알리는, 작지만 유일한 수단이다. 이를 억지로 차단한다면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란 뜻이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가 전단금지법 제정에 대해 “터무니 없다”고 논평한 이유다.

그렇다면 탈북자들의 의사표현에 무조건 재갈을 물리는 건 온당하지 않다.
그런 맥락에서 김 부부장이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하에 이를 방치하지 말라”고 요구한다고 해서 통일부가 전단금지법 추진을 거론한 건 성급한 처사로 비친다. 법으로 규제하기 보다는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
경우에 따라 탈북자 단체들의 활동이 남북관계를 얼어붙게 하는 부작용을 낳지 않도록 정부가 소통을 통해 자제를 요청하는 게 순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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