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죽은 아들 학교 찾아 "부디 성형 말거라" 서럽게 운 어머니 [김기자의 토요일]

김성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6.06 11:30

수정 2020.06.06 11:29

고 권대희씨 모친 이나금씨 경희대 찾아
3일 오전 오가는 대학생 앞에서 1인 시위
"한 달 고생하면 한 명 살린다는 마음으로"
고 권대희씨 모친 이나금씨와 경희대학교 재학생 김도협씨가 3일 오전 11시 30분부터 1시간 가량 경희대학교 서울캠퍼스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했다. 이들은 권씨를 수술한 병원의 공장식 유령수술이 반인권적인 행위이며, 이를 제대로 기소하지 않은 검찰이 직무유기라고 주장했다. 고 권대희씨 유족 제공.
고 권대희씨 모친 이나금씨와 경희대학교 재학생 김도협씨가 3일 오전 11시 30분부터 1시간 가량 경희대학교 서울캠퍼스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했다. 이들은 권씨를 수술한 병원의 공장식 유령수술이 반인권적인 행위이며, 이를 제대로 기소하지 않은 검찰이 직무유기라고 주장했다. 고 권대희씨 유족 제공.

[파이낸셜뉴스] 올해 들어 가장 더웠던 지난 3일 오전 11시 30분 경희대학교 서울캠퍼스, 점심식사를 위해 교문을 드나드는 학생들 앞에서 어머니뻘인 60대 여성이 피켓을 들고 섰다. 이 여성은 2016년 사망한 고 권대희씨 모친 이나금씨(60·여)로, 한 달 여 동안 대학가와 국회, 법원, 검찰을 돌며 1인 시위를 이어오고 있다.


이씨도 4년 전까진 경희대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둔 어엿한 학부모였다. 이 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권씨가 이씨 몰래 신사역 인근 한 성형외과에서 안면윤곽수술을 받기 전까지는.

2016년 서울 신사역 인근 한 성형외과에서 수술을 받다 중태에 빠진 권대희씨 수술 당시 CCTV 영상. 수술실에 남은 간호조무사 한 명이 휴대폰을 만지고 있다. 의무기록지와 비교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당시 환자 혈압이 80까지 떨어진 상황으로 추정된다. 고 권대희씨 유족 제공.
2016년 서울 신사역 인근 한 성형외과에서 수술을 받다 중태에 빠진 권대희씨 수술 당시 CCTV 영상. 수술실에 남은 간호조무사 한 명이 휴대폰을 만지고 있다. 의무기록지와 비교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당시 환자 혈압이 80까지 떨어진 상황으로 추정된다. 고 권대희씨 유족 제공.

■잃어버린 아들 모교에서 "부디 성형 말거라"

이씨가 연락을 받고 응급실로 달려갔을 땐, 이미 권씨의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이씨는 끝내 권씨와 한마디 말도 나눠보지 못한 채 아들을 떠나보내고 말았다.

고등학교 시절 턱 때문에 놀림을 받아온 아들은 늘 턱이 콤플렉스라고 했다. 그래도 사내이고, 워낙 밝고 성실했던 탓에 부모 몰래 성형을 받을 거라곤 상상한 적이 없었다. 그런 아들이 부모와 형에게도 알리지 않고서 혼자 병원을 찾아 수술을 받았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아들이 유일하게 사정을 털어놨다는 친구는 죽은 권씨가 워낙 겁이 많아 한 달 여 동안이나 발품을 팔며 병원을 정했다고 말했다. 이 친구는 권씨가 걱정하는 자신에게 “의사가 수술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진다”고 말했다며 도리어 안심까지 시켰다고 떠올렸다.

하지만 권씨는 끝내 가족과 친구들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제 고작 25, 제대로 피어보지 못한 꽃은 그렇게 떨어졌다.

사고 후 입수한 수술실CCTV와 경찰수사를 통해 드러난 사실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집도의는 뼈만 절개하고 나가버리고 누군지도 모르는 20대 신입의사가 수술을 이어받았다. 권씨가 흘린 피가 3000ml 용기에 가득 차 비워지도록, 바닥에 뚝뚝 떨어져 수차례 밀대로 닦여나가도록, 수혈은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의사 없이 간호조무사가 권씨를 지혈한 시간만 35분여에 달했다. 권씨와 함께 이뤄진 수술은 모두 3건으로, 의료진은 이 방 저 방 오가느라 권씨의 출혈량을 제대로 체크하지 못했다. 심지어는 의료진이 상태가 좋지 않은 권씨를 두고 퇴원했다가 밤이 늦어서야 돌아오는 모습도 찍혔다.

“법대로 하시라”는 말에 아들이 죽어가는 참혹한 광경을 500여차례나 돌려보게 됐다는 어머니는 오늘도 거리에서 피켓을 들고 억울함을 호소한다. 아들이 죽고도 ‘14년 무사고’광고를 버젓이 내걸었던 병원과, 이를 처벌하지 않은 검찰의 행태에 신뢰는 무너진 지 오래다. 담당 검사는 상해치사와 사기는 물론, 쟁점으로 꼽힌 무면허 의료행위 혐의도 기소하지 않았다. <본지 2월 1일. ‘[단독] 검찰, '권대희 사건' 전문감정과 정반대 결론... '봐주기 수사' 의혹’ 참조>

사건 발생 후 4년이 넘어서야 시작된 형사 1심에서 의료진은 기소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조차 다투고 있다.

3일 오전 경희대학교 서울캠퍼스 앞에서 1인 시위를 한 고 권대희씨 어머니 이나금씨가 행인이 박카스를 선물했다며 들어보이고 있다. 고 권대희씨 유족 제공.
3일 오전 경희대학교 서울캠퍼스 앞에서 1인 시위를 한 고 권대희씨 어머니 이나금씨가 행인이 박카스를 선물했다며 들어보이고 있다. 고 권대희씨 유족 제공.

■"단 한 명에게라도 알릴 수 있다면"

이씨는 좌절하지 않는다. 매일 어제보다 많은 희망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이날 역시 그랬다.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던 3일 낮 경희대학교 앞에서 그녀는 30장이 넘는 탄원서를 받았다며 밝은 목소리로 웃어보였다.

언제나처럼 외면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을 테지만, 지난 4년 간 홀로 외로운 싸움을 이어온 이씨는 다가와서 손을 꼭 잡아주는 학생들이 커다란 지지가 되었다며 진심으로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개중에는 권대희 사건을 알고 있다며 눈을 맞추고 응원하는 학생이 있었고, 박카스 2병을 사들고 돌아와 이씨 손에 쥐어주는 이도 있었다고 했다.

함께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한 경희대학교 3학년 김도협씨(23)와도 얼마 전까진 모르던 사이였다. 우연히 기사를 읽고 연락을 취해온 김씨에게 이씨는 어떻게 감사를 표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잃어버린 아들이 다시 또 생각났는지 더욱 서럽게 우는 모습에 주변 사람들도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녀를 지켜보았다.

김씨는 1인 시위에 앞서 대학생들이 많이 이용하는 에브리타임과 페이스북에 도움을 청하는 글을 작성해뒀다고 말했다. 김씨는 “에브리타임에서 호소 글을 접했다며 먼저 다가와 주신 분들을 보고서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며 “탄원서에 서명을 받다 보면 외면을 당하는 게 속상하기도 한데, 그럼에도 거리로 나오는 이유는 단 한 명의 생각이라도 바꾸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희망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날 탄원서 서명에 동참한 김현진씨(24) 역시 “평소엔 성형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지만 고 권대희씨 사연을 통해 유령수술과 공장식수술을 접하고 경악했다”며 “사고 영상을 보면 다양한 환자가 한꺼번에 수술을 받았고 절차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는데, 이런 수술 영상을 수도 없이 돌려보셨다는 어머님 사연에 너무 마음이 아팠다”고 전했다.

한편 이씨는 이후에도 법원과 검찰은 물론 대학가를 돌며 불법이 만연한 일부 성형외과 병원의 수술실태와 수술실CCTV의 필요성을 공론화하겠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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