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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정말 '삐라'에 민감할까…남북관계 전환 '명분' 삼은 듯

뉴스1

입력 2020.06.06 10:49

수정 2020.06.06 10:49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2018.4.27/뉴스1 © News1 한국공동사진기자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2018.4.27/뉴스1 © News1 한국공동사진기자단

(서울=뉴스1) 서재준 기자 = 북한이 연일 대북 전단(삐라) 문제를 남북관계 전반에 핵심 이슈로 끌어올리고 있다. 마치 이 문제가 남북관계 전체의 향방을 가르는 사안이라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북한은 전날인 5일 밤늦게 기습적으로 통일전선부 대변인 명의의 담화를 발표했다. 대남 전략을 총괄하는 기구인 통일전선부가 남북관계 관련 입장을 낸 것은 문재인 정부 들어 처음이다. 북한은 그간 통일전선부의 하위 기구라고 할 수 있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를 통해 주로 대남 사안을 다뤄왔다.

이번 담화는 지난 4일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의 담화에 연장선 상이자 김 제1부부장의 담화와 관련해 나온 정부 입장을 반박하는 내용이 담겼다.


김 제1부부장의 담화부터 이어지고 있는 북한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탈북자들이 중심이 된 단체들의 대북 전단 살포를 문제 삼고 이어 이를 막지 않는 우리 정부의 잘못을 지적하며 이 같은 우리의 태도로 인해 남북관계에 지장이 있을 것이라는 경고를 하는 것이다.

북한이 대북 전단 문제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한 것은 과거에도 있었던 일이다. 자신들의 최고존엄에 대한 공격이자 접경 지역에서의 분쟁 문제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다만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민간단체들은 대북 전단을 꾸준히 살포했는데 이번에 유독 이 문제를 걸고넘어지는 것은 다소 이례적이다. 대북 전단 살포 문제 이외에 다른 노림수가 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북한은 김 제1부부장의 담화에서 대북 전단 문제를 정부가 해결하지 못한다면 개성공단 철거, 남북 연락사무소 폐쇄, 남북군사합의 파기 가능성을 거론했다.

이어 통일전선부의 담화에서 김 제1부부장이 대남 사업을 총괄하고 있으며 우리 정부의 무성의한 태도로 인해 언급된 각종 조치들에 대한 실무적 검토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또 남북 연락사무소를 '반드시 철폐'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군사합의의 파기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접경지에서 "남측이 몹시 피로해할 일판을 준비하고 있으며 인차(인제) 시달리게 해주려고 한다"라고 말해 사실상 접경 지역에서의 도발을 시사했다.

이 같은 북한 주장의 맥락은 북한이 대북 전단을 빌미로 남북관계를 '흔들겠다는' 의도를 보인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노골적으로 대남 관련 공개 행보를 통해 파장을 일으키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특히 '경색 속 북한의 강경 행보는 대화의 포석'이라는 전통적인 대북 분석의 틀을 콕 집어 부인했다. 통일전선부 담화에서 "이는 꿈보다 해석을 좋게 하려는 습관이자 어리석은 해석이며 나름대로의 헛된 개꿈"이라고 비난한 것이다.

북한이 과거에 실제로 경색 속 대화 국면을 앞두고 강경 행보를 보였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통일전선부가 이를 정면으로 반박한 것은 정부의 대응과 무관하게 일단 정해진 수순에 따라 자신들의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다만 북한은 김 제1부부장의 담화에서 언급된 개성공단 철거, 연락사무소 폐쇄, 군사합의 파기 중 가장 강도가 낮은 연락사무소 폐쇄를 '선 조치'로 들고 나왔다.

개성공단 철거와 군사합의 파기가 실제 이행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조치임에 비해 연락사무소 폐쇄는 정치적 결정에 따라 비교적 순탄하게 재개할 수 있는 조치이기 때문이다.

또 한미합동군사연습 및 훈련 등 우리 정부가 주도적으로 조치하기 어려운 사안은 이번 담화들에 언급되지 않았다.

이는 아직 북한이 우리 정부의 행동을 지켜보면서 대남 행보의 톤을 조절하겠다는 여지를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우리 정부가 올 초부터 꾸준히 제안하고 있는 교류협력 제안을 공개적으로 거부하기는 어려운 상황에서 역공을 통해 경색의 책임론을 벗어나기 위한 행보라고 보기도 한다.

내부적으로 경제난 정면 돌파전을 10월까지 이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대외 행보가 쉽지 않은 것이 북한의 현실이다. 우리 정부의 일련의 대북 제안이 인도적, 평화적 조치에 방점이 찍힌 만큼 이를 명시적으로 거부하기보다 우리 측에 책임을 돌릴 수 있는 사안을 찾아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가져가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것이다.

한편으론 북한이 새로운 대남 전략을 수립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은 이번 통일전선부의 담화에서 처음으로 김 제1부부장이 "대남 사업을 총괄한다"라고 밝혔다.
통일전선부가 공개적인 활동을 재개한 것과 동시에 이 같은 발언이 나온 것은 북한 내에서 대남 사업에 대한 전환이 이뤄졌을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지난 4일 김 제1부부장의 담화 이후 즉각적으로 관련 입장을 낸 것과 달리 이번에는 북한의 의도를 시간을 두고 분석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도 북한이 일련의 담화를 통해 다목적 포석을 둔 것으로 일단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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