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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사회적 가치법안에 '측정' 조항 포함해야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6.10 18:07

수정 2020.06.10 18:07

정도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정도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정도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제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박광온 국회의원이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에 관한 기본법안'(사회적 가치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사회적 가치법안은 새 국회의 1호 법안이라는 상징적 의미뿐만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이 19대 국회에서 의원으로서 대표 발의한 법안이라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이 법안은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 및 공공기관이 계약 체약과 위임·위탁 등 정책을 수행하는 모든 과정에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사회적 가치법안은 160조원에 달하는 공공조달시장에 엄청난 파급을 일으킬 수 있다. 가령 이 법안은 공공기관의 장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특정 민간부문을 우대할 수 있으며, 나아가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해 사업자와 비영리단체에 재정적 지원방안을 마련·실천해야 한다. 심지어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는 도시·지역개발사업에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사업자에게 수주 기회를 늘려줘야 한다.


그런데 공공기관의 장이 우대기준을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 어떻게 정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의도적으로 특정 민간부문을 우대하거나, 사회적 가치 실현이라는 명목으로 특정 비영리단체에 재정을 지원하고, 특정 민간개발업자에게 수주 기회를 늘려줘도 방지할 수 있는 규정이 뚜렷하지 않다. 따라서 사회적 가치의 실현을 위해 우대하거나 재정을 지원하고 수주 기회를 늘려주기에 앞서 창출되는 사회적 가치를 명확히 측정·검증해서 사회적 가치법안이 오히려 사회적 불공평을 초래하는 수단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회적 가치법안은 사회적 가치 실현이라는 대의 아래 국공유 재산을 무상으로 대여하고, 금융과 세제까지 지원할 수 있도록 하지만 막상 공공기관 입장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명확하지 않다. 그런데 민간에서는 무엇보다도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기 위해 치열한 노력을 하고 있다. 국내에서 SK그룹은 사회적 가치측정의 프런티어로 앞장서고 있는데, SK의 측정방법이 진정성 있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사회적 가치의 창출효과뿐만 아니라 훼손 결과도 측정·공개하기 때문이다. 이런 측정의 원조는 세계 1위 화학기업인 BASF다. BASF는 2013년부터 사회적 가치를 화폐단위로 측정·공개하고 있다. 화학사업을 지속하려면 사회에 부정적 요소를 줄이고 긍정적 요소를 증가시켜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사회적 가치 측정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미 인지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회적 가치법안이 실체 없는 구호가 되지 않으려면 사회적 가치를 어떻게 측정할지 명확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사회적 가치법안은 초기보다 발전된 모습을 갖춰, 특히 성과평가는 훨씬 정교해졌다. 즉 공공기관은 사회적 가치를 자체평가하고, 사회적가치위원회에 보고·공시해야 하며, 포상이나 시정될 수 있다.
그런데 평가의 우선순위와 기준을 달리 설정해 각자 평가한다면 그 평가가 실효성 있을까. 더욱이 공공기관 간 비교가 가능할까. 그래서 민간기업에서는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타당한 원칙(즉 회계기준)에 따라 가치를 측정해 상호 비교한다. 법안에서 평가항목이나 방법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여지를 남겨 놓았으므로,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사회적 가치의 보편타당한 측정기준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향후 사회적 가치법안의 공론화 과정에서 피터 드러커 교수의 "측정하지 않으면 관리할 수 없다"는 명구를 되새기며, 사회적 가치 측정조항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진행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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