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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구룡마을 '동상이몽'

김현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6.11 17:16

수정 2020.06.11 17:36

[여의도에서] 구룡마을 '동상이몽'
서울시가 최근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에 100% 공공임대 4000여가구를 건설하는 개발계획을 내놓자 그동안 잊고 있었던 서울의 마지막 판자촌이 들썩이고 있다. 구룡마을은 노원구 중계동 백사마을과 함께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다.

1980년대 도심 개발의 광풍에 밀려 강남 외곽으로 밀려났던 이주민들이 대모산과 구룡산 아래 모여 살면서 형성된 집단촌락이다.

마을 전체가 무허가 판자촌이다 보니 원주민들은 비가 새 지붕을 수선하면 쫓겨나고, 화재가 일어나도 좁고 포장이 안 된 골목으로 소방차가 들어가지 못해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으며 30~40년을 살아왔다.

그들의 고단한 삶은 30여년 전이나 다를 바 없지만 이제는 그곳이 금싸라기 땅으로 변했다. 구룡마을 입구 앞 양재대로만 건너면 서울 재건축 신화인 개포주공아파트가 있다.
이미 '래미안 블레스티지' '디 에이치 아너힐즈' 등 이름만 들어도 초고가일 것 같은 35층 높이의 아파트가 내려다보이는 곳이 구룡마을이다. 구룡마을을 굳이 그런 아파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십억대 단지로 개발할 필요는 없다.

원주민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임대단지를 넣고, 생명과 안전이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해 강남의 마지막 남은 유휴부지를 주민과 공공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개발을 추진하면 된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서울시의 '혼자만의 플랜'이 도저히 현실화될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구룡마을 임대 개발의 걸림돌은 크게 3가지다.

우선은 토지보상 문제다. 현재 구룡마을은 자연녹지구역이어서 개발을 하려면 2·3종일반주거지구로 용도변경을 해야 한다. 서울시는 현재 자연녹지구역에 맞는 감정평가액을, 토지주는 시세를 반영한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둘이 주장하는 보상액 차이는 최대 10배 이상일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문제는 개발방식이다. 서울시는 100% 임대단지를 말하지만, 현실적으로 민간에 토지 일부를 매각하고 분양하는 비율을 넣지 않으면 과연 사업시행을 맡을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이를 감당할 수 있을까 싶다. SH공사 역시 시의 100% 임대 발표에 놀란 모습이다.

마지막이 가장 큰 논란거리다.

구룡마을 원주민들은 '임대 후 분양'을 요구하며 서울시의 안을 절대 수용하지 않고 있다. 30~40년을 거주했어도 무허가로 점유한 땅에 대한 재산권을 요구할 수 있는가 하는 논쟁은 잠시 미뤄두자. 폐지를 주워 하루 몇천원으로 생활하는 초고령의 일부 원주민들은 "임대를 감당할 수도 없고, 차라리 이렇게 살겠다"고 반발한다. 구룡마을 주민협의회 대표는 "우리와 이야기 한번 없이 추진했다"며 "목숨을 걸고라도 막겠다"고 격앙됐다. 실제 구룡마을 사람들은 곧바로 서울시에 들이닥쳤다. 강남구는 100% 임대는 아니라며 딴지를 걸고 나섰다.

서울시는 '임대 후 분양'은 원주민들이 분양받은 집을 엉뚱한 투자자에게 팔고 밀려나는 악순환만 부른다고 맞선다.


2011년 첫 개발계획이 나오고 2~3 차례 엎어졌던 구룡마을 사업이 어떤 합의점도 없이 세월이 흘렀다고 성사될까 하는 의문이 든다.

서울시의 방식이 옳다고 대화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자 오만이다.
시는 구룡마을 사람들이 서울시를 찾게 만들지 말고, 이제라도 구룡마을로 달려가야 할 것이다.

kimhw@fnnews.com 김현우 건설부동산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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