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6만채 들어선 곳
재산권 침해 소지 있어
6·17 부동산 대책을 놓고 뒷말이 무성하다. 서울 강남구 청담·삼성·대치동, 송파구 잠실동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한 것도 그중 하나다. 서울시는 17일 정부 시책에 발맞춰 4개 동 전역 14.4㎢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었다. 앞으로 해당 지역에서 주거용 18㎡, 상업용 20㎡를 초과하는 토지를 사고팔 때는 미리 구청장의 허가를 얻어야 한다. 허가를 받지 않은 계약은 무효다. 주거용 토지는 2년간 매매·임대가 금지된다.
재산권 침해 소지 있어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은 부동산거래신고법 10조에 근거를 둔다. 예전에도 정부와 지자체는 이 제도를 종종 활용했다. 서울에선 수서역세권, 구룡마을 개발사업, 서초 보금자리 사업에 적용됐다. 가장 최근엔 8000가구 미니신도시가 들어설 용산 정비창 사례가 있다. 신도시가 들어설 공공택지도 흔히 토지거래를 제한한다.
다만 청담·삼성·대치·잠실동은 다른 사례와 꽤 큰 차이가 있다. 이미 4개 동에는 모두 6만채가 넘는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장차 아파트가 들어설 빈 땅이 아니라 이미 주민이 사는 곳이다. 이 때문에 이번 조치가 재산권을 침해할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는 허가대상 면적을 부동산거래신고법 시행령(9조)상 기준면적의 10% 수준으로 낮췄다. 원래 기준면적은 도시 주거지역은 180㎡, 상업지역은 200㎡ 초과다. 서울시는 이를 주거 18㎡, 상업 20㎡로 낮췄다. 기준면적 숫자에서도 알 수 있듯 당초 허가구역 지정은 대형 개발을 앞두고 투기꾼이 넓은 땅을 사는 걸 막는 데 목적을 뒀다. 하지만 서울시는 강남 집값을 잡는 수단으로 이 면적을 10분의 1로 낮췄다. 해당 지역 주민이 서울시를 상대로 소송을 걸면 과연 어떤 결론이 나올지 궁금하다.
정부는 지금껏 부동산 대책을 스물한번이나 발표했다. 현 정부가 출범한 지 37개월이 됐으니 두달에 한번 꼴이다. 부동산 정책이 뭔가 잘못 굴러가고 있다는 건 삼척동자도 안다. 오직 정부와 정치권만 모르는 듯하다. 약효가 없으니 자꾸 더 센 약을 쓴다. 그래봤자 부작용만 더할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정치권이 부동산 시장을 정치의 굴레에서 놓아주길 바란다. 투기와의 전쟁 같은 정치적 수사는 지지율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서민 주택복지 향상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 정부가 강남과 싸우느라 정작 힘을 써야 할 서민 임대주택, 청년주택 건설 등은 등한시하기 때문이다. 강남·송파구 4개 동을 정조준한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은 합리적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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