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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썸'만 3년… 정부 어장에 갇힌 기업들

김경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6.18 17:40

수정 2020.06.18 17:40

[여의도에서] '썸'만 3년… 정부 어장에 갇힌 기업들
아직 연인은 아니지만 서로 사귀기 전의 미묘한 관계를 '썸'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란 뜻의 'something'에서 따온 말로 요즘 여기저기서 많이 쓰인다. 문재인정부는 지난 3년간 경제계를 상대로 썸만 탔다. 손을 내밀다가도 다시 거두는 일을 반복하면서 기업들을 안달나게 했다.

연애를 할 때 썸만 타는 경우는 보통 자신이 없어서 고백을 미루거나, 반대로 너무 잘나가서 '어장관리'를 할 때다. 어장관리는 실제로 사귀지는 않지만 마치 사귈 것처럼 친한 척하면서 자신의 주변 이성들을 동시에 관리하는 태도를 말한다.
당연히 어장관리를 하다 상대방에 걸리면 '나쁜놈'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문재인정부는 어장관리 정부다. 기업과 썸만 타는데, 높은 지지율로 자신감이 넘치면서도 관리만 하니 후자인 어장관리 쪽이 맞다.

정권이 반환점을 돌 때까지 정부는 기업에 등을 돌렸다. 경제계의 계속된 구애도 퇴짜만 놨다. 적폐와 정경유착을 바로잡아주길 바라는 국민의 기대 속에 태어난 정부여서 어쩌면 반기업 정책은 당연했다. 그럼에도 때때로 경제계의 도움은 불가피했기에 어장관리를 택한 것일 수 있다.

어장 속에 갇힌 경제계의 3년은 너무도 깜깜했다. 대외적으론 글로벌 경영환경 악화에다 안으로는 최저임금의 급속 인상, 주 52시간 근로제, 법인세율 인상 등이 쉴 새 없이 몰아쳤다. 하지만 상황이 변했다. 코로나19는 역사상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형태로 국가와 국민의 생존을 위협했다. 처음엔 방역에서, 이제는 경제로 문제가 넘어왔다.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가. 정부에도 친기업 정책을 펼칠 반가운 명분이 생겼다. 정부는 이달 초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수도권 유턴기업 지원 강화와 대기업 지주회사의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허용 검토 등 그간 금기시한 정책을 풀어놨다. '한국판 뉴딜'에 대기업의 투자를 유도해 경제회복의 모멘텀을 만들면서 재계의 손을 잡아주는 듯했다.

그러나 아직도 썸타는 버릇은 여전했다. 온갖 규제를 풀어 기업 기를 살리자고 한 지 10일도 지나지 않아서 슈퍼여당과 정부가 기업활동을 옥죄는 반기업법을 다시 밀어붙였다. 법무부는 다중대표소송제도 도입, 감사위원 분리선임, 감사 선임 시 주주총회 결의요건 완화 등의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20대 국회에서 불발된 공정거래법 전면개정안을 다시 추진했다.

한 정부에서 각 부처의 목소리가 다르게 전파되는 것은 문제다. 정부는 '그건 그거고(경제는 경제고), 이건 이거다(공정은 공정)'라며 분리해서 보라고 한다. 이건 말이 안 된다. '썸만 타고 결혼 생각은 없다'는 쪽과 무슨 연애를 할 수 있겠나.

또다시 정부의 어장관리에 당한 경제계는 멘붕(멘탈붕괴) 상태다. 재계는 이런 상황을 불확실성이 확대됐다고 받아들인다. 경제는 심리라는 측면에서 불확실성은 참 답답한 악재다. 재계는 투자계획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오른쪽 깜빡이를 켜고 좌회전하는 정부 스스로 없어도 될 불확실성을 키운 것이다. 친기업은 차치하고, 정부 의도가 무엇인지 제대로 신호를 줘야 기업들은 헷갈리지 않고 수년짜리 투자를 할 수 있다.
썸이 길어지면 관계는 망한다. 성장과 고용의 핵심 축인 기업들의 손과 발을 묶어서는 문 대통령의 경제선순환론은 공염불이다.
올여름, 지루한 썸을 끝낸 정부와 기업인들이 함께 냉면 데이트를 할 수 있다면 진정한 포스트 코로나 시대도 열릴 것이다.

km@fnnews.com 김경민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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