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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70년] 끊임없는 북핵 도전사…한반도 총성 없는 '전쟁 중'

뉴스1

입력 2020.06.21 07:01

수정 2020.06.21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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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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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최소망 기자 = 6·25 전쟁이 발발한지 70년이 됐지만 남북 간에는 여전히 총성 없는 전쟁이 이어지고 있다.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 탓에 끊임없이 한반도는 물론 전세계의 긴장감은 마치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 내리락하고 있는 모습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가 국제사회 현안으로 떠오르지는 약 30여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사실 북한이 핵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6·26 전쟁이 정전된 직후인 1950년대부터다.

북한은 6·25 전쟁 중 미국의 핵무기를 두려워했다. 그러다 1960년대로들어서면서 중국과 소련과의 갈등이 노골화되자 북한은 중국편 또는 소련편도 아니라는 '주체사상'을 펼치면서 자체적으로 핵 무기 개발에 몰두하게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북핵 개발의 발단이 된 것은 1956년 북한 물리학자 30여명을 소련 '드부나 핵 연구소'에 파견하면서부터다.
이어 소련과 1959년 체결한 '조소 원자력 평화 이용에 관한 협정' 이후 북한의 핵무기 개발 움직임이 이어진다.

1962년 영변에 원자력연구소를 설립하고 김일성대학·김책공과대학에 '핵연구부문'을 창설하며 자체적으로 핵 개발을 위한 인력을 양성했다. 북한은 1965년 6월 소련의 'IRT-2000' 원자로를 영변에 도입하면서 본격적인 핵 연구를 진행했다.

북한은 핵 개발을 드러내지 않고 은밀하게 진행했다. 자신들의 핵개발 의도를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철저히 숨긴 것이다.

1974년 7월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가입했고 이어 1985년 12월 핵확산금지조약(NPT)에도 가입해 자신들의 핵 계획에 평화 목적이라는 것을 국제사회에 알리려고 했다. 그러나 NPT 가입국은 18개월 내 IAEA와 핵안전협정을 체결하고 기구로부터 핵사찰을 받아야하지만, 북한은 끝까지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다 미국의 군사정찰위성 등을 통해 북한을 관찰했고, 그 결과 1989년 7월 영변에 핵폭탄 원료가 되는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는 재처리 시설이 있다고 발표했다. 미국이 영변 핵시설의 위성사진을 일본 도카이대에 의뢰했고, 도카이대는 1990년 2월 북한의 원자력발전소, 핵연료 재처리 시설, 방공포 등 군사시설을 공개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 전 세계에 알려지는 시점이었다.

남한은 북핵을 해결하기 위해 1991년 남북 고위급회담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이끌어 냈지만 북한 핵 문제는 1994년 제네바 핵합의가 체결될 때까지 밀고 당기는 상황을 지속했고, 미국의 그해 6월 북한 핵시설 폭격 계획은 한반도 내 긴장감을 마치 6·25 전쟁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1994년 11월 북한은 핵 활동 동결을 선언하면서 소위 '제1차 북한 핵 위기'를 종결시켰다. 북한의 핵 활동을 멈추는 수준에서 합의한 것이다. 일단 시간을 벌자는 북한의 의도였다.

그러다 2005년 2월 10일 김정은 국방위원장은 '핵무기 보유'를 선언했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대북 송전을 제안하는 등 유화적인 조치로 북한을 6자 회담 테이블로 끌어들였다. 그해 9월 19일 열린 6자 회담에서는 '북의 모든 핵무기와 현존 핵 계획 포기' 등 6개 항의 9·19 공동성명이 채택됐다.

하지만 북한은 2006년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제1차 핵실험에 나선다. 북한이 실제 행동을 감행하자 한반도 전쟁 위험은 다시 고조됐다. 2007년 2월 13일 6자 회담을 통해 '영변 원자로 폐쇄 및 불능화' 합의가 이뤄졌다.

그러나 이러한 잠잠한 평화도 오래가지 않았다. 북한은 2008년 9월 영변 원자로의 봉인을 해제했고, 이듬해 5월 제2차 핵실험을 실시했다. 이어 2013년 2월 북한 3차핵실험이 이어지고, 2013년 4월 영변 원자로 재가동도 시작하겠다는 발표가 이어졌다.

북한은 핵·미사일 무기의 능력을 고도화하며, 다시 한반도 군사적 위협의 수위를 높였다. 2016년 1월 북한은 제4차 핵실험(수소탄 시험)을 단행했고, 그해 2월에는 광명성 장거리 로켓을 발사했고 이어 8월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 시험발사를 했다. 핵무기를 탑재할 발사체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실험에 나선 것이다. 그리고 SLBM 시험발사 16일만인 2016년 9월 9일 제5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2016년 핵실험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한 대북제재 결의 2270호를 통과시켰다. 미국도 기존의 대북제재 목록에 북한의 핵·미사일 관련 개인 및 기관을 추가하며 북한에 대한 압박을 강화했다. 그렇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핵·미사일 개발을 오히려 강화하고 있다.

북한의 핵 개발과 미사일의 목표는 한국뿐만 아닌 미국도 해당된다. 북핵 개발의 위협은 전세계 위협이 됐다. 한국과 미국의 주한미군 사드(THAAD) 배치는 이제 미국과 중국·러시아에 위협이 됐다. 북핵 문제가 한반도는 물론 전세계 강대국들의 군사적 위협 수위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앞으로 더욱 공세적인 핵전략을 내세우며 위협 수위를 높일 가능성이 있다. 미국·중국 등 주변국은 남한과는 달리 북한의 핵이나 미사일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을 찾기 보다는 이로 인해 파생되는 사안에 집중하며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할 수 밖에 없다.
70년 전 6·25 전쟁 발발 당시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를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남북이 자주적으로 협력해 평화를 이뤄나가야만 70년 전의 전쟁을 되풀이 하지 않을 수 있다.
이를 위해 북핵 문제는 반드시 해결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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