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버린 자식 목숨값 챙기는 부모들… '법의 철퇴'는 언제쯤 [이슈 분석]

박지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6.21 17:36

수정 2020.06.21 17:36

'구하라법', 21대 국회선 통과될까
부양의무 게을리할땐 상속결격
구하라법, 20대 국회 자동폐기
"양육, 공동책임" "기여도 중시"
권리만 챙기려는 부모에 제동
버린 자식 목숨값 챙기는 부모들… '법의 철퇴'는 언제쯤 [이슈 분석]
#1. 9살때 딸을 버리고 떠나 일절 소식이 없던 친모는 연예인 활동으로 재산을 축적한 구하라씨의 사망 소식을 듣자 찾아와 상속분의 절반을 요구했다. 현행법상 상속 권리가 있던 친모는 절반의 상속분을 받아갔다.

#2. 이혼후 떠나 32년간 자식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친모가 소방관으로 일하던 딸이 순직하자 갑자기 나타나 유족급여를 챙겨갔다.

#3. 딸이 8살때 이혼 후, 양육비 지급이 일절 없던 친부는 딸이 수학여행 중 사고로 사망하게 됐고, 이에 대해 보상금이 나오자 이를 전부 가져갔다. 친모는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별도의 보상금 신청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고 구하라씨의 오빠인 구호인씨가 지난 5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구하라법 통과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div id='ad_body2' class='ad_center'></div>'구하라법'은 부양의무를 제대로 못한 부모나 자식을 상대로 재산상속을 막는 법으로 이번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 오르지 못해 자동 폐기됐다. 뉴스1
고 구하라씨의 오빠인 구호인씨가 지난 5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구하라법 통과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구하라법'은 부양의무를 제대로 못한 부모나 자식을 상대로 재산상속을 막는 법으로 이번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 오르지 못해 자동 폐기됐다. 뉴스1

평소 자식을 돌보지 않던 부모가 사망한 자식의 재산 상속을 받는 것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미성년 자식을 돌본 부모의 기여도를 상대적으로 더 인정하거나 상속을 받으려면 그간의 양육비를 내야 한다는 식의 법적 해석이 잇따르고 있다.

20대 국회에서 폐기된 '구하라법(민법 개정안)'도 21대 국회에서 통과될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구하라법은 부양의무를 게을리한 자를 상속 결격 사유로 인정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폐기된 '구하라법' 재조명

21일 법조계 및 정치권에 따르면 21대 국회가 출범하면서 서영교 의원이 대표로 재발의한 구하라법은 민법 1004조 개정에 대한 것이다. 가족을 살해하거나 유언장을 위조하는 등 제한적 경우에만 유산 상속 결격 사유를 인정하는 현행 민법에서 '직계존속 또는 직계비속에 대한 보호 내지 부양 의무를 현저히 게을리한 자'를 추가했다.

지난 5월 19일 20대 국회에서 마지막으로 열린 법안심사소위에 참석한 의원들은 서영교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 민법 개정안을 포함한 관련 민법 개정안 4건에 대해 모두 "상속제도 전반에 대한 검토가 필요한 사안에 해당한다"며 '계속심사' 결정을 내렸다. 이후 20대 국회가 폐원하면서 구하라법은 자동폐기됐다.

전문가들은 실제로 '부양의무를 현저히 게을리한'이란 조문이 실제로 상속제도 전반에 혼란을 더할 수 있다고 일부 우려하고 있다. 부양이란 행위를 수치화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결국 판사의 재량이 더 늘어 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부모의 '기여분' 해석 주목받나

상속에 대한 결격 사유를 추가하지 않더라도 부양의무를 다한 부모에 대한 기여도를 더 인정해주자는 법률적 해석이 등장했다.

실제 위에서 언급한 사례 #3의 경우 법원는 이혼 후 양육에 대한 의무를 일절하지 않은 친부가 딸이 사망후 보상금을 요구하자 기여분의 관점에서 접근했다.

결격사유는 차치하고, 미성년 자녀 부양에 대한 '기여도'가 친부에 비해 친모가 더 높게 인정 받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담당 재판부는 "기여분 제도는 공동상속인 중에 피상속인(이 사건에서 미성년 자녀)을 특별히 부양하였거나 피상속인의 재산의 유지 또는 증가에 관해 특별히 기여했을 경우 이를 상속분 산정에 고려하자는 것"이라며 "기여분을 인정받으려면 피상속인을 특별히 부양하였다거나 피상속인 재산의 유지 또는 증가에 특별히 기여했다는 사실이 인정돼야 한다"고 대법원 판결을 인용해 판시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친부가 양육비를 지급하거나 양육에 관여하지 않은 사실 등을 미루어 보다 미성년 자녀를 전적으로 양육한 상속인이 피상속인인 미성년 자녀를 특별히 부양했다고 보아 기여분을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실제 민법 1008조2에 따르면 다른 상속인들 보다 훨씬 더 부양한 사람에게 특별히 인정되는 게 기여분이다.

해당 판결을 불복한 친부 측은 항소했지만, 항소심 재판부 역시 친모의 기여분을 인정한 1심 재판부의 판결이 옳다는 의견을 피력했고, 친부 측은 결국 항소심을 철회했다.

■ "유족급여 가져가면 양육비 내라"

최근 '전북판 구하라 사건'으로 알려진 소방관 딸이 순직하자 32년 만에 나타나 유족급여 등 1억원 가량을 챙겨간 생모에 대해 법원이 두 딸을 홀로 키운 전 남편에게 양육비 77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전주지법 남원지원 가사1단독 홍승모 판사는 이 사건 판결에 대해 "부모의 자녀 양육의무는 자녀의 출생과 동시에 발생하고, 양육비도 공동책임"이라면서 "친모는 두 딸의 어머니로서 청구인(전 남편)이 딸들을 양육하기 시작한 1988년 3월 29일부터 딸들이 성년에 이르기 전날까지 두 딸에 관한 과거 양육비를 분담해야 한다"며 전 남편에게 77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당장 구하라법 개정으로 부양의무를 다하지 않은 부모에 대한 상속을 막을 수 없지만, 기여분에 대한 인정 혹은 양육비 지급 등의 판결 모두 책임은 피하고 권리만 누리려는 비정한 부모들에 대한 차단책이란 게 법조계 전반적인 의견이다.
한편 '구하라법'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물은 올라온 지 17여 일만에 10만 명이 넘는 동의를 받은 바 있다.

pja@fnnews.com 박지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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