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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 추구하던 히타치·소니, 흑자 구조조정으로 개혁 일상화"

조은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6.25 16:50

수정 2020.06.25 18:10

박상준 와세다대 교수가 본 日기업 생존법
조직 내 위기의식 공유·경쟁사와 협업 등
데스밸리 겪으면서 기존 경영방식 탈피
"안정 추구하던 히타치·소니, 흑자 구조조정으로 개혁 일상화"
【 도쿄=조은효 특파원】 "매 순간 개혁해야 한다." 잃어버린 20년이란 '죽음의 골짜기'를 건넌 일본 기업들의 최근 경영의 트렌드는 '상시 개혁'이다.

일본의 불황 극복기를 '불황터널'(2016년)과 '불황탈출'(2019년) 연작으로 내놓은 박상준 와세다대 교수는 "최근 일본 기업들은 '흑자 구조조정'이라든가 '매 순간 개혁해야 한다'는 말을 부쩍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과거 일본 경영계에선 없었던 현상"이라고 밝혔다.

박 교수는 25일 도쿄 와세다대 인근 한 호텔에서 이뤄진 본지와 인터뷰에서 일본 기업이 개혁의 상시화를 부르짖는 이유에 대해 한마디로 "잃어버린 10년, 20년의 대가가 너무 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체로 일본 사회는 변화보다는 지속과 안정, 순응에 대한 관성이 강하다. 장인기업이 많은 것도 이런 특성의 발로다.
그렇다 보니 외부로부터의 돌발적 위기에 취약한 면도 없지 않다.

박 교수는 "버블붕괴 당시 상당수 일본 기업이 '마지막 순간'에 가서야 변화를 택했고, 그로 인한 희생과 비용이 너무 컸다"며 "그때의 경험을 기반으로 선택과 집중을 통해 상시 구조조정을 택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흑자가 나도 향후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파악되면 과감히 정리한다는 것이다. 실제 일본 기업들은 최근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드론산업, 6세대(6G) 통신 등 4차 산업혁명 분야를 중심으로 사업구조 개편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명'이 있으면 '암'도 있다. 상시적 흑자 구조조정은 종신고용 기조가 강한 일본 사회에 고용불안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박 교수는 과거 1990년대, 2000년대의 암흑기를 탈출한 일본 기업엔 크게 3가지 '비밀'이 있다고 설명했다. 바로 경영자의 리더십, 조직 내 위기의식 공유와 생존을 위해서라면 '적과의 동침'도 마다하지 않는 기업 간 협업 풍조다.

일본의 '100년 기업' 히타치제작소가 대표적이다. 박 교수는 "히타치는 지난 2009년 7873억엔(약 8조9300억원)이란 엄청난 적자를 기록해 과연 이 회사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며 "새 리더를 중심으로 경쟁력이 없는 사업은 다 팔아버리고, 솔루션사업으로 방향을 전환하면서 현재는 완전히 다른 회사가 됐다"고 했다. 한번 방향을 정하면 거침없는 속도로 질주한다는 것이다.

히타치의 부활을 이끈 가와무라 다카시 전 회장은 지금도 일본 샐러리맨과 대학생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가와무라 전 회장은 과거 히타치가 극적 변화가 가능했던 배경에 대해 "통증이 불가피한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는 성장전략을 동시에 추진했기 때문"이라며 "구조조정만 했다면 한손으로 박수치기였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칼만 휘둘러선 안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일본 기업가들에겐 종업원을 해고하는 데 부담감을 느끼고, 부끄럽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다"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고용을 지켜냈다는 데 대한 일종의 자부심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이런 경영관으로 임금을 깎더라도 해고는 최소화하면서 일본 경제가 암흑기를 지나온 것"이라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평판 좋은 일본 기업가와 종업원의 관계를 보면 리더는 종업원들을 '후배'로 보고, 종업원들은 내부승진을 거쳐 최고 자리에 오른 그들을 '선배'로 바라본다는 게 한국과 일견 비교되는 부분"이라고 했다.

일례로 2018년부터 소니를 이끌고 있는 요시다 겐이치로 사장은 본사 임원 시절 "우리는 과거 좋은 시절 소니의 영광과 함께했다. 다음 세대에 더 나은 소니를 물려주자"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한다.
박 교수는 "이는 소니 개혁의 슬로건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기업 간 활발한 합종연횡도 위기탈출 과정에서 일본 기업이 체득한 경영기법이다.
박 교수는 "히타치는 주력이었던 화력발전기 사업을 미쓰비시중공업과 통합하면서 통합회사의 주도권을 미쓰비시중공업에 넘기는 통 큰 결단을 했다"며 "도요타가 파나소닉, NTT, 소프트뱅크 등과 다양한 협업을 모색하고 있는 것도 위기에서 얻은 협업의 학습효과"라고 덧붙였다.

■박상준 교수 약력
△와세다대 국제학술원 정교수 △전 일본 국제대 조교수 △미국 위스콘신대 경제학 박사 △서울대 경제학과 학사·석사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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