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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전자보석을 아시나요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6.25 17:20

수정 2020.06.25 17:20

[여의나루] 전자보석을 아시나요
죄를 짓지 않고도 감옥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본인의 자유를 담보로 사회의 안전을 지키는 1만6000명에 이르는 교정공무원들이다. 수용시설 내부에 근무하러 들어가려면 휴대폰을 보관해야 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 휴대폰이 없다면 퇴근할 때까지 세상과의 단절을 감수하는 것이다. 굳은 신념과 봉사정신이 없으면 수행하기 힘든 직업이다.

코로나19의 어려움 속에서도 변호인의 접견교통권 보장을 위해 수고하는 것에 대한 감사 인사차 서울구치소를 방문했다.
지난 2월 취임한 소장님의 목소리가 힘찬데 얼굴은 수척해 보인다. 지난 몇 달 코로나19 방역 때문에 제대로 발 뻗고 잠을 잔 적이 없을 정도로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 수고와 헌신에 깊이 감사드린다.

코로나19와 같은 질병이 발생하면 교정시설은 초긴장 상태가 된다. 공간적 제약 때문에 거리두기가 가장 어려운 장소이기 때문이다. 숫자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지만 최근 5년간 매년 5만명 이상씩 수용되고 있다. 5월 31일 기준으로 수용인원 5만2786명인데, 이 중 미결수가 약 35%인 1만8721명이다. 교정시설은 한정돼 있는데 수용인원이 많아 과밀수용되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위헌이라고 판시하고 있는 구치소 내 과밀수용의 원인 중 하나는 구속 수사와 재판이 많기 때문이다.

헌법 제27조 4항은 '형사피고인은 유죄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무죄로 추정되므로 불구속 수사와 재판이 원칙이라는 것이 우리 헌법재판소의 입장이다. 형사소송법 제198조에도 '피의자에 대한 수사는 불구속 상태에서 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규정돼 있다. 모두 신체의 자유와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불구속 수사와 재판 원칙을 관철하려면 영장 발부에 신중해야 하며, 구속된 이후라도 보석제도가 활성화돼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구속자 대비 보석률은 미국 47%, 영국 41%, 유럽 평균 30.2%에 비해 겨우 3.6%에 불과하다. 구속사유 중 가장 많은 것이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인데, 둘 중 하나만 줄여도 구속이 줄어들 것이다.

최근 도망할 염려가 없게 만들어 구속을 줄이고자 '전자감독 조건부 보석제도', 줄여서 전자보석제도가 도입됐다. 지난 2020년 2월 공포된 '전자장치 부착 등에 관한 법률'(일명 전자장치부착법) 개정안에 따르면 법원은 피고인에게 전자장치 부착을 조건으로 보석을 명할 수 있게 됐다.

한편 전자장치를 신체에서 임의로 분리·손상, 전파 방해 또는 수신자료의 변조, 그 밖의 방법으로 그 효용을 해한 때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전자보석제도는 시범실시 기간 20명에게 집행됐는데, 6명이 집행 완료됐고 현재 14명에게 적용되고 있다.
대상자의 생활편의와 낙인을 최소화하기 위해 손목시계 형태의 전자장치를 사용하고 있다.

전자보석제도는 형사사법 절차에서 불구속을 확대해 방어권 보장의 실질화, 미결구금의 부작용 해소, 교정시설 과밀 완화, 재범방지 효과 등을 가져온다.
불구속 상태에서 자유롭게 변호사와 접견교통하면서 수사와 재판을 준비하는 것이 원칙으로 자리잡는다면 코로나19 방역을 통해 보건 선진국임을 증명한 대한민국은 사법과 교정에서도 선진국이 될 것이다.

이찬희 대한변호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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