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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 칼럼] 행동주의 주주의 시조 로스 페로

뉴스1

입력 2020.06.26 06:30

수정 2020.06.26 11:39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News1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News1

(서울=뉴스1)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1979년에 이란에서 사업 중이던 한 미국 기업의 임원 두사람이 계약분쟁 때문에 이란정부에 체포되어 수감되는 일이 일어났다. 당시 이란은 이슬람 혁명 직전이어서 미국과 이란 사이의 외교채널은 어수선했다. 그러자 회사의 회장이 바로 이란으로 날아가 특수부대 출신들로 팀을 만들어 두 임원을 감옥에서 탈출시켰다. 그 와중에 약 1만 명의 이란인 죄수들도 탈옥했다. 다수가 정치범들이었다. 회장은 터키 국경을 넘어 빠져나왔다.
이 회장이 바로 로스 페로(Ross Perot)이고 회사는 EDS (Electronic Data Systems)다.

페로는 대학을 다니다가 해군에 입대해 구축함과 항공모함에서 근무했다. 1957년에 제대한 페로는 IBM에 입사해 최고의 세일즈맨이 된다. 어떤 해에는 1년 치 목표를 2주 만에 채워버릴 정도였다. EDS를 창업한 것은 1962년이었다. 77전 78기 끝에 첫 계약을 따냈고 1968년에 기업을 공개했다. 주가는 16달러에서 며칠 안에 160달러가 되었다.

1984년 EDS가 24억 달러에 GM에 매각되면서 페로는 GM의 최대주주가 되었고 이사회에 합류했다. 당시 GM은 로저 스미스가 경영하고 있었는데 관료주의가 팽배했고 회사는 전반적으로 방향감각을 상실해 첨단 시설과 난공불락의 브랜드 파워를 가지고도 일본 자동차회사에 밀리고 있었다. 1980년에 GM은 이미 1921년 이래 첫 적자를 기록했었다. EDS를 인수한 이유도 공정의 현대화를 위한 것이었다.

페로는 회사의 실정을 파악한 후 곧 실망했다. 포춘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요약했다. “나는 뱀이 보이면 바로 죽이는 곳에서 일했습니다. GM에서는 뱀이 보이면 뱀에 대한 컨설팅을 받습니다. 그런 다음 뱀에 대한 위원회를 구성해서 몇 년 동안 논의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습니다. 뱀이 아직 아무도 물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냥 공장에서 돌아다니게 둡니다. 우리는 뱀을 발견한 첫 직원이 바로 뱀을 죽이는 그런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1985년 10월 23일에 페로는 그 유명한 다섯 페이지짜리 서신을 스미스에게 보낸다. 권위주의적인 경영 스타일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여기서 페로는 일본 자동차회사들이 기술과 자금력으로 미국 회사들을 이기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낙후된 장비를 가지고도 효율적인 경영으로 가성비가 좋은 차를 생산하기 때문에 미국 회사들에 앞서간다고 지적했다. 자신은 GM의 최대주주이자 이사일 뿐 아니라 노련한 사업가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향후 솔직한 대화를 통해 상호 신뢰를 구축하고 GM을 같이 되살리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서신을 받은 스미스는 페로를 이사회에서 축출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스미스가 경영한 9년 동안 GM은 공장 신축에 800억 달러를 지출했는데 휴즈항공사를 인수하는데도 100억 달러를 투자했다. 휴즈항공사 인수에는 이사회에서 페로만이 반대했다. 결국 그 돈의 대부분이 낭비로 끝났고 회사는 쇠락을 계속했다. 9년간 GM의 시장점유율은 46%에서 35%로 하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미스는 단지 페로를 회사에서 내보내기 위해 1986년에 페로 지분을 사들이는데 7억 달러를 지출했다. 페로 자신도 놀랐을 정도였다.

페로는 이 일에 대해 주주들에게 경고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페로와 GM 사이에서 일어난 일은 미국에서 침묵하는 거인 기관투자자들이 무대 위에 올라 기업지배구조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본격적인 계기가 되었다. 페로가 떠난 직후 미국 최대 기관투자자인 캘퍼스(CalPERS)가 스미스 축출 운동을 시작했던 것이다.

GM을 떠난 몇 주 후에 페로는 당시 애플에서 축출되었던 스티브 잡스를 TV에서 보았다. 잡스의 열정에 감명받은 페로는 잡스가 새로 시작한 NeXT에 2000만 달러를 투자해 엔젤이 되었다.

로스 페로는 1992년에 무소속으로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클린턴, 아버지 부시에 이어 19%를 득표해 1912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이래 무소속으로는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클린턴이 재선되었던 1996년에도 출마해 8.4%를 득표했다. 2019년 7월 9일에 89세를 일기로 타계했을 때 두 번의 대통령 선거에 거액을 쏟아부었어도 미국 167위의 부호였다. 2020년 기준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275위이고 민주당 대선후보에 도전했던 마이클 블룸버그는 (세계) 16위다.


페로가 스미스에게 1985년 서신을 쓰던 당시까지 미국의 자본시장은 ‘기업사냥꾼’으로 불린 레이더(Raider)들이 행동주의를 주도하고 있었다. 이기적이고 파괴적인 행동이 많았다.
페로의 서신과 행동은 그를 불식하고 오늘날 기관투자자들과 행동주의 헤지펀드들이 사용하는 ‘건설적인’ 방식을 최초로 도입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 이 글은 뉴스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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