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조선시대 목장, 일제강점기 비행장..여의도 기구한 변천사

안승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6.26 11:15

수정 2020.06.26 11:14

한국전쟁 당시 여의도기지에서 출격 대기 중인 F-51D전투기. 서울시 제공 /사진=fnDB
한국전쟁 당시 여의도기지에서 출격 대기 중인 F-51D전투기. 서울시 제공 /사진=fnDB
[파이낸셜뉴스] #여의도는 모래톱으로 이루어져 이용가치가 적은 땅이었다. 일제강점기부터 1960년대 초까지 비행장으로 사용되다가 1968년 윤중제 착공과 함께 강력한 국가 주도의 개발로 신개념의 도시가 계획되고 실현됐다. 서울에서 가장 평평하고 완결된 섬 여의도는 어떻게 정치, 방송, 금융의 중심지가 되었을까
서울역사박물관은 여의도의 시대별 변천사를 담은 '여의도, 방송과 금융의 중심지' 보고서를 발간했다고 26일 밝혔다. 박물관은 지난 2007년부터 서울의 지역조사를 10년 넘게 지속해왔는데, 이번 여의도편은 그 32번째 시리즈다.

■한국 최초의 민간 비행장 여의도
역사박물관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조선시대 여의도는 국가가 관리하는 짐승을 기르는 목축의 공간으로 이용됐다. 일제강점기들어 일본군은 여의도에 간이비행장을 건설했는데, 이것이 한국 최초의 비행장이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1954년 4월 26일 여의도 국제공항이 정식 개항했는데, 홍수에 취약해 1961년 김포로 완전히 옮겨갔다.

1967년 한강의 치수와 매립지 확보를 위한 '한강개발 3개년 계획'으로 시작된 여의도 개발은 1968년 2월 밤섬이 폭파되며 본격화 됐다. 김수근을 중심으로 한 젊은 건축가들의 여의도 개발안을 시작으로 최첨단의 아파트 단지, 고층의 업무시설, 국내 기술과 국내 재료를 사용한 국회의사당 등이 하나둘씩 완공됐다. 군사퍼레이드, 반공 관제 시위가 열리던 5·16광장도 완성됐다.

1980년대 들어서며 새로운 정권의 정당성을 위해 5·16광장의 이름을 '여의도광장'으로 바꿨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가 확정되며 시작된 한강개발계획에 따라 한강시민공원이 재정비되고 유람선이 다니기 시작했다.

여의도시범아파트 모델하우스 전시장. 서울시 제공
여의도시범아파트 모델하우스 전시장. 서울시 제공
1973년 건축 중인 국회의사당. 서울시 제공
1973년 건축 중인 국회의사당. 서울시 제공
■방송·금융 산업의 메카로 급부상
1976년 KBS가 여의도에 신사옥을 건설한 이후 1980년 TBS, 1983년 MBC가 여의도로 이전했다. 1990년 SBS도 여의도에서 개국하며 여의도는 한국 방송산업을 대표하는 대명사가 됐다. 하지만 2014년 상암 디지털미디어시티로 SBS와 MBC가 이전하며 현재 여의도에는 KBS만이 남았다.

여의도 이전에 금융산업의 중심은 명동이었다. 그러나 1978년 증권감독원(현 금융감독원)이 여의도 화재보험빌딩으로 이전했고, 1920년대 이래 명동에 위치했던 한국증권거래소(현 한국거래소)도 1979년 여의도로 자리를 옮기며 여의도 금융시대가 열렸다.

1980년대 중반 경제 호황으로 성장한 증권사들은 거래 업무 전산화가 진행되면서 빠른 전산거래를 위해 여의도 거래소 내 전산시스템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에 위치하기 위해 여의도로 이전 했다.

한편 로컬데이터(localdata.kr)에서 공개된 일반음식점과 휴게음식점의 개·폐업 데이터를 활용해 분석한 결과 여의도 식당의 평균 영업기간은 12.8년이다.
이는 10.3년인 서울 평균에 비해 2.5년이 더 많다.

10년 단위로 구분해보면 30년 이상 된 업소가 전체 식당의 11%를 차지한다.
이 중 1970년대에 개업한 음식점은 총 12개이며, 이 중 중식당이 5개를 차지한다.

ahnman@fnnews.com 안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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