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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권대희 사건' 그림자의사, 인턴도 안 거친 초짜였다 [김기자의 토요일]

김성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6.27 14:00

수정 2020.06.27 13:59

권대희 사건 그림자의사 정체 드러나
최근 법원 제출된 변호인의견서 입수
의사면허 취득 직후부터 성형외과 근무
전신마취 환자에 고지 없이 의료행위 수행
유족에 한 마디 사과 없이 혐의 전면 부인
[파이낸셜뉴스] 2016년 신사역 인근 ㅈ성형외과에서 안면윤곽수술을 받다 중태에 빠져 사망한 고 권대희씨 사망사건 당시 수술을 이어받은 ‘그림자 의사’ 정체가 최종 확인됐다. 의사면허를 취득한지 고작 6개월 차인 일반의였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안면윤곽 수술을 받기 위해 전신마취 상태에 들어간 환자에게 사전 고지되지 않은 초짜 의사가 의료행위를 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집도의인 이 병원 원장 장모씨 측은 ‘현대의 의료는 점차 분업화, 세분화되고 있고 팀의 형태로 의료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다며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조차 다투는 상태다.

그림자 의사 신모씨 측 역시 ‘지시에 따라 업무를 수행’했다며 법적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사망한 권씨와 고작 2살 차이였다는 점을 감안해 끝까지 진솔한 사과를 기대했던 유족은 지난 공판까지 한 차례도 사과하지 않은 신씨에 대해 분노를 표출한 바 있다.


고 권대희씨 수술 당시 그림자의사였던 신씨가 사건 당시 인턴조차 거치지 않은 일반의 신분이었던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 신씨는 졸업한 의학전문대학원 관련 대학병원에서 레지던트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변호인의견서 캡처.
고 권대희씨 수술 당시 그림자의사였던 신씨가 사건 당시 인턴조차 거치지 않은 일반의 신분이었던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 신씨는 졸업한 의학전문대학원 관련 대학병원에서 레지던트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변호인의견서 캡처.

■인턴도 안 거친 초짜가 성형수술실에

27일 본지가 입수한 신씨 측 변호인의견서에 따르면 신씨는 의사면허 취득 직후인 2016년 3월부터 권씨 사고가 있었던 9월까지 ㅈ성형외과에서 봉직의사로 근무했다. 의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한 신씨가 면허를 취득한 건 같은 해 3월 2일이다.

레지던트는 물론 인턴조차 하지 않은 상태로 성형외과 미용성형 업무를 담당한 것이다.

의견서에 따르면 신씨는 이 병원에서 원장 장씨의 지시에 따라 수술환자의 수술부위를 세척하고 봉합하며 지방분해 주사를 놓았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 6일 근무한 것으로 파악돼 이 기간 동안 문제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이들의 수술실에 들어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신씨가 수술 중 지혈 등 의료행위를 한다는 사실을 환자가 알지 못한다는데 있다. 사망한 권씨에게도 원장 장씨가 ‘수술을 끝까지 책임진다’고 언급한 사실에 비춰, 이 병원에서 수술 받은 적잖은 환자가 신씨의 존재를 몰랐으리라는 추정도 가능하다.

사고 이후 원장 장씨는 유족에게 신씨를 가리켜 ‘부원장’이라고 표현했으나 병원 사이트 어디에도 신씨와 관련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특히 권씨 사건 당시 수술실CCTV 영상과 경찰 수사를 통해 밝혀진 바와 같이 이 병원이 동시에 여러 건의 수술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진 상황에서 권씨 사례와 같이 신씨가 중요한 역할을 맡은 사례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권씨 사건에서 신씨는 뼈만 절개하고 다른 수술실로 자리를 비운 장씨에 이어 수술실에 들어와 수술을 이어받는다. 이 과정에서 환자에게 과다한 출혈이 발생하고 있음이 CCTV 상으로도 명확히 확인되지만 신씨는 장씨를 불러오지 않고 본인이 지혈을 계속하다 간호조무사에게 이를 맡기고 자리를 비운다.

2016년 서울 신사역 인근 한 성형외과에서 수술을 받다 중태에 빠져 숨진 권대희씨 수술 당시 CCTV 영상. 그림자의사 신씨가 권씨를 지혈하는 가운데 시트를 타고 떨어져 바닥에 고인 피를 간호조무사가 밀대걸레로 닦고 있다. 신씨가 지혈하는 동안에만 4차례 밀대질이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 수술실CCTV 영상 캡처.
2016년 서울 신사역 인근 한 성형외과에서 수술을 받다 중태에 빠져 숨진 권대희씨 수술 당시 CCTV 영상. 그림자의사 신씨가 권씨를 지혈하는 가운데 시트를 타고 떨어져 바닥에 고인 피를 간호조무사가 밀대걸레로 닦고 있다. 신씨가 지혈하는 동안에만 4차례 밀대질이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 수술실CCTV 영상 캡처.

■그림자 의사 신씨, "법적책임 없다" 항변

신씨 측은 책임이 없다고 항변한다. ‘집도의, 마취의, 보조의의 역할과 업무는 각자의 지위와 전문성에 따라 차이가 있’다며 공소가 제기된 혐의 상당부분을 부인한 것이다.

수술 이후 환자 상태가 악화됐고 이는 보조의에 불과한 신씨의 책임이 아니라는 점, 통상적인 시각에 퇴근한 신씨에게 병원에서 연락이 오지 않았다는 점, 집도의와 마취의에게 환자 상태를 보고하고 지시에 따라 업무를 수행했다는 점 등이 주요한 근거다.

이와 관련해 신씨 측은 ‘피고인들은 각자 지위와 맡은 역할에 현저한 차이가 있’다며 ‘공소사실은 모든 피고인들에 대해 동일한 주의의무를 전제로, 동일한 주의의무위반을 묻고 있는바, 타당하지 않’다는 주장을 편다.

이처럼 수술을 이어받은 그림자의사 신씨조차 책임 있는 판단을 하기 어려운 초짜 의사였던 상황에서 집도의와 마취과의사가 수술실을 장시간 비운 점은 중대한 문제로 지목될 수 있다.

수술실CCTV 상에선 집도의 장씨가 오후 12시 56분부터 1시 59분까지 약 1시간 가량 뼈 절제 등을 하고 수술실을 나간 것으로 드러난다. 이후 신씨가 수술실에 들어와 지혈을 시작하기까지의 2분여, 신씨마저 자리를 비운 2시 54분부터 다시 들어온 3시 25분까지 30분 가량은 수술실에 의사가 단 한 명도 없는 상태가 이어진다. 이 기간 동안 지혈은 간호조무사 혼자 혹은 교대로 수행했다.

이미 2시를 전후해 신씨가 장씨와 마취의 이모씨에게 ‘환자 출혈량이 많다’는 취지로 보고했고 자리를 비우기 전까지 지혈작업도 계속 하는 등 출혈이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게 분명함에도 간호조무사만 남겨둔 채 수술실을 비운 점은 문제로 지적될 수 있다.

또한 상당한 시간 동안 집도의와 마취의가 자리를 비워 환자의 정확한 상태를 알기 어려웠음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는 점, 이 병원에서 수개월 간 근무하며 수혈할 수 있는 혈액이 준비돼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리라는 점, 의사로서 환자의 출혈량이 몹시 커 이로 인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기본적 지식이 기대되는 점 등을 고려하면 권씨의 죽음에 신씨의 책임이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

수술 중 권대희씨가 흘린 혈액 최소 추정치인 3500cc와 통상적인 안면윤곽수술 실혈량을 비교한 모습. 고 권대희씨 어머니 이나금씨가 지난 17일 권씨의 출혈 심각성을 시각적으로 보이기 위해 종이컵에 붉은 물감을 탄 물을 직접 담았다. 사진=김성호 기자
수술 중 권대희씨가 흘린 혈액 최소 추정치인 3500cc와 통상적인 안면윤곽수술 실혈량을 비교한 모습. 고 권대희씨 어머니 이나금씨가 지난 17일 권씨의 출혈 심각성을 시각적으로 보이기 위해 종이컵에 붉은 물감을 탄 물을 직접 담았다. 사진=김성호 기자

■4개월째 '검토 중'··· 재정신청 결론에 영향줄까

신씨의 경력이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도 일천하다는 사실은 서울고등법원이 검토하고 있는 재정신청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집도의 장씨와 마취의 이씨가 신씨에게 권씨를 맡겨둔 채 자리를 떠났다는 사실은 환자상태에 대한 판단을 신씨에게 의존해야 하는 상황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신씨까지 권씨를 두고 30여 분 간 자리를 비웠다는 사실은 담당 수사검사가 불기소 처분한 ‘무면허 의료행위 교사·방조’ 혐의를 충분히 적용하는 게 가능하지 않았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에 대해 장씨는 사고 이후 이뤄진 유족과의 대화에서 “부원장(신씨)이 어차피 피도 나니 완전히 지혈을 하기 위해 다른 간호사(간호조무사를 가리킴)한테 누르라 하고 다른 환자를 먼저 봉합을 했다”고 언급해 권씨를 두고 신씨가 다른 수술실에서 다른 환자 봉합을 진행했다는 사실을 인정한 바 있다. 특히 권씨 출혈이 통상의 경우보다 현저히 많다는 걸 인지한 신씨가 권씨 출혈이 여전히 멎지 않아 위험이 가중된 상태에서 간호조무사에게 조치를 넘겼다는 점은 검찰이 위 혐의를 불기소한 게 적절치 않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권대희 사건 다음 공판은 8월 11일 오후 2시 30분으로 예정된 상태다. 검찰 기소의 당부를 살피는 법원 재정신청은 이르면 이날 전까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결과에 따라 담당 수사검사인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당시 부장 강지성·현 부장 이창수) 소속 성재호 검사에 대한 책임여부도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수사기관 등에선 권대희 사건 검찰송치 당시 성 검사가 경찰에 쟁점사안을 빼라는 수사지시를 수차례 내렸다는 증언까지 나온 상태다. <본지 6월 27일. ‘[단독] 정상치 10배 넘게 피 흘렸지만 '혈액 요청도 없었다' [김기자의 토요일]’ 참조>

이와 관련해 MBC PD수첩은 오는 30일(화) 밤 10시 50분 '검사와 의사친구' 편을 통해 권대희 사건 담당 검사와 피고인 측 변호사의 관계를 파헤친다고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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