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윤중로] 22개 혈맹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기억

전용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6.28 16:25

수정 2020.06.28 16:25

[윤중로] 22개 혈맹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기억
기념일은 1년 중 그 하루만이라도 누군가의 헌신과 희생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기 위한 날이다. 얼마 전 6·25 발발 70주년을 맞았다. 한반도에서 6·25전쟁이 계속된 3년 동안 국군 13만명, 유엔군 4만명 등 17만명이 대한민국을 지켜내다 목숨을 잃었다. 안타깝게도 이들을 기념하기 위한 날은 없다. 모든 전쟁은 종전이 되고 나서야 승전자 또는 패전자 입장에서 기념되기 때문이다. 6·25전쟁은 아직 종료되지 않았다.


다만 국가에서 6·25전쟁과 제2연평해전이 있는 6월을 '호국보훈의 달'로 지정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고 있다. 올해 6월은 더욱 특별하다. 6·25 발발 70년을 맞기 때문이다. 올해 6·25전쟁 기념식도 매우 특별하게 진행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1990년대 초반 그리고 2018년, 북한이 미국으로 송환한 유해 가운데 한·미 양국의 합동감식을 통해 국군 전사자로 판명된 147명 전사자의 송환을 직접 맞이했다. 전사 장병들의 70년 만의 귀환신고가 이뤄진 셈이다. 정부가 직접 이름 붙인 이날 행사 주제는 '영웅에게'였다. 6·25 당시 헌신한 모든 이들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의미다.

6·25 영웅은 우리 국군 장병뿐만이 아니다. 전 세계 21개국에서 온 유엔군이라는 이름의 청년 175만4000여명이 낯선 땅 대한민국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피땀 흘려 싸웠고, 이 중 4만명이 목숨을 잃어 귀환하지 못했다. 우리는 이 영웅들을 얼마나 기억하고 예우해왔을까.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는 한국은 물론 참전 21개국과 유엔의 희생을 기리기 위한 23개의 참전비가 세워져 있다. 이 참전비가 세워지게 된 과정의 우여곡절은 우리가 유엔 참전용사들에게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당시 전쟁기념사업회에서 참전비 건립을 위한 예산이 없어 후원을 몇몇 기업에 요청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는 후문이다. 이때 부영그룹이 손을 들었다. 평소 '6·25 1129일'을 집필해 배부해 오는 등 6·25 바로 알리기에 앞장서온 부영그룹(회장 이중근)이 지원하기로 했다. 유엔 창설 70주년을 맞은 2015년 참전비가 전쟁기념관에 세워질 수 있었다.

최근 참전국 22개국 정상들이 대한민국에 영상편지를 보내왔다. 혈맹으로 맺어진 한국과 우정을 소중히 되새기겠다는 내용들이다. 은혜를 갚는 가장 첫 번째 단계는 고마움을 기억하는 것이다. 10년 전쟁기념사업회에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0%가 6·25 당시 어떤 나라들이 참전했는지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같은 설문조사를 다시 해도 응답률에는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역사를 기억하지 않는 자들에게 과거는 반복되고, 은혜를 기억하지 않는 자들에게 은혜의 기회는 또다시 찾아오지 않는다.
그리스, 남아공, 네덜란드, 노르웨이, 뉴질랜드, 덴마크, 독일, 룩셈부르크, 미국, 벨기에, 스웨덴, 에티오피아, 영국, 이탈리아, 인도, 캐나다, 콜롬비아, 태국, 터키, 프랑스, 필리핀, 호주(이상 가나다순). 1년 중 6·25 단 하루라도 22개국 혈맹들을 떠올려 보는 것은 어떨까. 오늘날의 평화를 준 데 대한 고마움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courage@fnnews.com 전용기 건설부동산부장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