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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로] 금융중심지 서울을 기대한다

윤경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7.02 17:50

수정 2020.07.02 17:50

[윤중로] 금융중심지 서울을 기대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대통령선거에서 '동북아 금융허브(중심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듬해 동북아 금융허브를 향한 로드맵이 만들어졌다. 2007년 말에는 관련 법이 제정됐고, 2009년 1월 서울과 부산이 금융중심지로 지정됐다. 곧이어 '서울을 홍콩, 싱가포르와 함께 아시아 3대 금융허브로 육성한다' '글로벌 50대 자산운용사의 지역본부를 유치한다' 등 장밋빛 청사진이 제시됐다.

그로부터 10년이 넘게 흘렀다. 서울은 달라진 게 있을까. 적어도 '금융중심지'를 외치는 여의도 스카이라인은 많이 바뀌었다.
서울국제금융센터(IFC)와 FKI타워에 이어 내년이면 문을 여는 파크원까지 50층 이상의 고층 빌딩들이 줄지어 섰다.

그뿐이다. JP모간을 비롯해 바클레이스, UBS 등 글로벌 금융기업들은 오히려 한국에서 방을 뺐다. 영국의 금융컨설팅그룹 지옌이 발표한 국제금융센터지수(GFCI)에 따르면 전 세계 108개 도시 가운데 서울의 금융 경쟁력은 33위에 불과하다. 도쿄(3위), 싱가포르(5위), 홍콩(6위)은 물론 선전, 광저우 등 중국의 도시들에 비해서도 뒤처진다. 지난 2008년 53위에서 2015년 6위까지 올랐으나 최근 몇년 새 뒷걸음만 친 셈이다.

무역분쟁에 홍콩보안법까지 겹치면서 중국과 미국의 갈등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금융중심지로서 홍콩의 위상도 흔들리는 모양새다. 미국이 홍콩에 대한 특혜를 박탈하면서 홍콩에 자리잡고 있는 금융 자본과 인력이 대거 빠져나가는 '헥시트(Hexit)'를 예상하는 시각이 많다.

싱가포르, 도쿄, 상하이 가운데 누가 반사이익을 얻을 것인지 관심이 쏠리고 있으나 서울은 거론조차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존재감이 없다는 얘기다. 싱가포르는 이미 홍콩에서 빠져나온 자금을 흡수하며 수혜를 보고 있다. 일본 정부는 비자 면제 등 파격적인 우대조치를 검토 중이라고 한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국도 뭔가를 하고 있기는 하다. 외국 금융사를 유인하기 위한 혁신적 규제 완화는커녕 전북 전주의 제3 금융중심지 지정을 둘러싸고 지루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서울도, 부산도 20년 가까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마당에 가당키나 한 것인지 모르겠다. 금융중심지는 '글로벌' 차원에서 판단해야 하는데 '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으로 끌어내려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생각이다.

앞선 지옌의 발표와는 다소 상반된 내용이지만 국제금융센터는 최근 서울이 향후 금융허브 부상 '잠재성' 평가에서 9년 만에 홍콩을 제쳤다고 발표했다. 지금 홍콩을 두고 일어나는 일련의 사태가 한국이 금융허브로서 기능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이를 위해 경제금융특구 육성 등 '선택과 집중'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동북아 금융허브'의 꿈을 포기하기는 아직 이르다.
당장은 헥시트하는 기업들을 잡을 수 없다고 해도 언제 또 다른 기회가 찾아올지 모른다. 지금부터라도 글로벌 금융기업들이 탐을 낼 만한 서울의 경쟁력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서울의 '잠재성'이 언젠가 현실이 되기를 바라본다. 여의도 고층빌딩들이 글로벌 금융기관들로 가득 차는 그날이 오기를.

blue73@fnnews.com 윤경현 증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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