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사과 한 알 먹기 위해 버리는 쓰레기들

오은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7.09 17:41

수정 2020.07.09 17:58

[기자수첩] 사과 한 알 먹기 위해 버리는 쓰레기들
자취를 시작한 지 한달여가 지났다. 빨래며 설거지며 퇴근 후 대부분의 시간을 집안일에만 쏟는데도 왜 돌아서면 자야 할 시간인지 정말 모를 일이다. 가장 놀라운 건 매일 나에게서 나오는 쓰레기의 양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분리수거장에 출근하지만 버리고 들어오는 그 순간 새로운 쓰레기가 생긴다.

매일 버리는 쓰레기의 9할은 포장 폐기물이다. 한번은 아침에 먹으려고 사과를 배송시켰다.
택배박스 안에 사과박스가 다시 포장돼 왔다. 박스에 붙여진 비닐을 뜯고나니 낱개로 비닐포장된 사과가 군데군데 7개쯤 들었다. 그렇게 열심히 포장된 사과가 혹시라도 상처 입을까 박스 아래엔 스티로폼까지 고이 깔려 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환경부에 따르면 포장 폐기물은 생활폐기물 발생량 중 약 35%나 된다. 보통 플라스틱, 폐지와 함께 배출돼 발생량 통계도 정확하지 않다. 비닐이나 플라스틱 등을 모두 합친 생활계 폐플라스틱 발생량은 2009년 188만톤에서 2018년 323만톤으로 약 70% 늘었다. EPR(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 대상인 합성수지 포장재 출고량도 같은기간 51만톤에서 100만톤으로 100% 증가했다.

쓰레기 발생 자체를 줄이기 위해 정부가 나섰지만 녹록지 않다. 이달부터 시행 예정이었던 1+1 제품 등에 대한 '재포장 금지 시행규칙'은 '할인 묶음 판매 자체를 하지 말라'는 취지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환경부는 "불필요한 포장만 금지하는 것"이라며 열심히 해명했지만 결국 원점 재검토하기로 했다. 업계도 "충분한 유예기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현재 EU 국가에서 포장재를 출시하기 위해서는 포장재 최소화, 재사용과 재활용 설계 등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독일의 경우 신포장재법을 통해 모든 포장재를 대상으로 생산자책임제도를 확대했다. 또 중앙기관에 포장재 사전등록을 의무화해 미등록 포장재는 시장에 출시조차 못하게 하고 있다.

우리도 "쓰레기를 줄여야 한다"는 취지 자체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는 꽤 높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코로나19 사태 이후 배달음식 등 일회용품 수요가 늘면서 더 그렇다. 편리함을 조금 줄이더라도 지속가능성을 더 높여야 할 때다.
환경부의 뒷받침되지 못한 준비과정은 차치하고서라도, 앞으로의 정책 방향을 기대해봐야 할 때이기도 하다.

onsunn@fnnews.com 오은선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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