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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들여 만든 '상어' 책, 서점에서 못 구하는 이유 [김성호의 Yo! Run! Check!]

김성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7.11 14:00

수정 2020.07.11 13:59

[김성호의 Yo! Run! Check! 5] 유종수·최윤, '상어, 세상에서 가장 신비한 물고기'
[파이낸셜뉴스] 아까운 책 수백권이 출판사 창고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올해 초 출간됐다 바로 회수된 <상어, 세상에서 가장 신비한 물고기> 이야기다.

기자는 국립해양생물자원관에서 나온 징계를 취재하며 이 책을 알게 됐다. 책의 공동저자인 유모 자원관 해양생물연구본부장이 적절한 절차를 밟지 않고 저자로 이름을 올려 자원관의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게 징계의 이유였다. <본지 6월 6일. ‘[단독] 공들여 만든 '상어' 책, 창고에 처박힌 이유 [김기자의 토요일]’ 참조>

자원관은 출판사인 지성사가 판매하려던 책을 회수하도록 요구했고 이후 출판사에 어떠한 통보도 하지 않았다. 지성사는 출판금액을 회수하지 못한 채 책을 창고에 보관하고 있는 상태다.
출판사와 협의해 책이 출간되도록 한 유 본부장은 징계를 받았고 재심을 거쳐 정직 3개월의 징계가 확정됐다.

회수조치돼 반년 넘게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상어, 세상에서 가장 신비한 물고기' 표지. fnDB
회수조치돼 반년 넘게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상어, 세상에서 가장 신비한 물고기' 표지. fnDB

■석연찮은 징계수위, 부정 의도 '확인 안 돼'

취재과정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유 본부장의 잘못이 중징계를 받을 만한 것인지의 문제였다. 책은 공동저자인 유 본부장과 최윤 군산대학교 교수의 성과물로 확인됐고, 출판사와 저자 간에 금전이 오간 일도 없었으며, 계약서엔 ‘단행본 출판에 있어 저작권자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을 갑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었다. 그런데 왜 자원관은 유 본부장에게 최고 수준의 징계인 정직3개월 처분을 내린 걸까.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다.

자원관에 연락해 유 본부장에게 다른 혐의가 있는지를 물었다. 기관이 임직원에게 최고 수준의 중징계를 내릴 때는 경찰에 수사의뢰를 할 만한 혐의와 관련되는 게 보통이기 때문이다. 취재과정에서 확인된 유 본부장의 잘못은 사전에 자원관과 협의 없이 책의 저작권자로 자신의 이름이 들어가게끔 한 것 정도였고, 이는 과학도서를 주로 출판하는 지성사의 다른 책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사례였다.

이에 대해 자원관 감사실 관계자는 “돈이 오가거나 신고를 할 만한 건 전혀 없었다”며 “저작권이 침해된 부분에 대한 징계”라고 선을 그었다. 혹시 다른 이의 연구성과를 도용했느냐 물으니 그 역시 “아니다”란 답이 돌아왔다.

확인한 계약서는 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계약서엔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이 저작권자란 내용이 명시돼 있었다. 책이 출간돼 수익이 나오더라도 자원관에 귀속된다는 뜻이다.

책 정보가 담긴 페이지. 저작권자를 뜻하는 'ⓒ' 표기와 함께 유 본부장 이름이 들어가 있다. 유 본부장은 계약서에 저작권자가 기관으로 명시돼 있고 해당 표기에 대해서도 사전에 알지 못했다는 입장인 것으로 파악됐다. fnDB
책 정보가 담긴 페이지. 저작권자를 뜻하는 'ⓒ' 표기와 함께 유 본부장 이름이 들어가 있다. 유 본부장은 계약서에 저작권자가 기관으로 명시돼 있고 해당 표기에 대해서도 사전에 알지 못했다는 입장인 것으로 파악됐다. fnDB

■반년 넘게 책 출간 막은 'ⓒ' 표기 문제

문제는 출간된 책에 저작권 표시(ⓒ)가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이 아닌 ‘유종수’라 쓰여 있는 데서 빚어진 것이다. 이에 대해 유 본부장은 책에 저작권자로 본인이 표기된 것을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항변한다. 유 본부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상업서적 출판에 대해 출판사와 계약내용을 검토한 건 맞지만 출판사가 기관과 계약없이 유통해도 된다고 한 적은 없다”며 “계약서에도 기관이 저작권자로 명시돼 있어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출판사 관계자 역시 "과학책을 출판해 수익이 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전에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이랑도 작업을 많이 했고 (비슷하게 처리했지만) 문제가 된 적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아직도 책을 어떻게 구할 수 없겠냐는 문의가 오곤 한다"며 "자원관에서 빨리 조치를 취해줘야 하는데 아무런 연락이 없다"고 답답해했다.

출판계에선 기관 연구성과물을 상업서적으로 출간하는 경우 'ⓒ' 표기에 연구자 개인이 들어가는 사례가 종종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과학서적과 같이 수익이 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책의 경우엔 ⓒ 표기를 출판사 차원에서 알아서 처리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원관은 징계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자원관 관계자는 "외부 전문가가 포함된 위원회에서 징계를 결정했다"며 "지노위로 갈 수도 있는 건데 요즘에는 위원들도 근거 없이 할 수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비슷한 사유로 중징계 처분을 한 전례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없었다"고 답했다.

금전적 이해관계도 확인되지 않았고 징계당사자의 저작권 침해 의도도 없었지만 기관 내에서 간단히 처리하는 대신 중징계 처분을 내린 이유에 대해선 확인할 수 없었다.

자원관은 유 본부장이 충남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정직 구제신청을 한 상태라며 그 결과에 따라 책 유통 등 후속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수개월이 걸릴지도 모를 절차가 진행된 이후에야 책 유통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뜻이다.

'상어, 세상에서 가장 신비한 물고기'는 5년 역사를 가진 국립해양생물자원관 연구성과물 가운데 대중서로 출판된 첫 사례다. fnDB
'상어, 세상에서 가장 신비한 물고기'는 5년 역사를 가진 국립해양생물자원관 연구성과물 가운데 대중서로 출판된 첫 사례다. fnDB

■세금들여 만든 책, 이렇게 사장돼도 괜찮은 걸까

출판사에 연락해 책을 받아보니 당혹스러움은 더욱 커졌다. 책이 생각보다 더 양질이었기 때문이다. 상어에 대한 풍부한 정보가 들어있을 뿐 아니라 유명 화백이 직접 그린 53종의 상어 세밀화와 다양한 상어 표본까지 실려 있어 상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탐낼 만한 책이었다.

학술적으로 의미가 있을 뿐 아니라 충분히 쉽게 쓰여 대중서로도 가치가 높아보였다. 상어가 아이들에게 폭넓은 관심을 받는 생물임에도 이와 관련한 책이 거의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부 추천도서로 선정될 가능성도 충분했다.

자원관은 어째서 자체 연구성과물을 의미 있게 전파하려 하지 않은 건지도 궁금했다. 기존에 자원관은 연구성과물을 일부 전문가에게만 제한적으로 배포하고 논문을 발표하는 등의 활동을 했을 뿐 5년여 간 대중서적은 한 권도 내놓지 않은 상태였다.

이와 관련해 과학분야 저명 학자인 이모 S대학 원로교수는 "국가 예산이 들어간 과학지식 성과물에 대해 공공기관은 이를 확산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자원관 내부의 문제로 잘 준비된 해양과학지식이 사장될 처지에 있는 건 큰 문제”라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한 출판사가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이라며 “출판사에서도 책이 좋다며 기대를 많이 했는데 자원관이 어떻게든 입장을 정해 독자들이 만나볼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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