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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관칼럼] 모든 아이에겐 안전한 집이 필요하다

예병정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7.19 17:47

수정 2020.07.19 17:47

[차관칼럼] 모든 아이에겐 안전한 집이 필요하다
"솔직히 저는 엄마에 대해 정이 없어요. 엄마 같은 느낌이 안 들어요. 엄마와 새아빠가 싸우면 꼭 나 때문에 싸우는 것 같아요. 다시 위탁가정으로 가고 싶을 때가 있어요."

위탁가정에서 지내던 아이가 원래의 가정으로 돌아간 뒤에 쓴 글이다. 부모의 학대 등으로 집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간 아이에게 집이 여전히 편하지 않고, 부모가 여전히 부모 같지 않은 상황은 우리 사회의 슬픈 현실을 보여준다.

국내 아동학대의 약 80%는 집에서 부모에 의해 발생한다. 전체 아동학대의 약 10%가 재학대인데 반복적으로 아이를 다시 학대하는 이들의 90% 이상은 부모다. 아이에게 가장 안전해야 할 공간과 관계를 폭력이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학대가 확인됐을 때 피해자인 아이는 학대 행위자로부터 분리돼야 한다.
그러나 분리가 능사는 아니다. 아이에게 집을 떠나는 건 충격적인 일이고, 성인이 될 때까지 시설에서 자라는 것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아동 최선의 이익의 원칙'에 따라 아이가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하기에 가장 좋은 환경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아이가 태어난 가정에서 안전하게 자라는 것이다. 아동보호 체계를 우리보다 먼저 정착시킨 미국, 영국에서도 보호의 일반적 원칙은 원가정 보호이다. 아동학대가 발생했을 때 아이를 집에서 데리고 나오는 것보다 학대 행위자를 집에서 내보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상상해볼 때도 있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분리된 아이의 치유를 돕고 원가정의 양육 환경과 방식을 개선하도록 지원하며, 전문가의 판단하에 아이가 안전한 가정에 복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극단적 사례를 제외하고 아동학대가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부모의 양육 태도 및 방법의 부족'이다. 이를 바꾸려면 학대로 판정된 뒤에도 변화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부모에 대한 강력한 제재수단이 마련돼야 한다. 이와 함께 가족이 깨지지 않고 재학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원가정 회복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

지난달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건강가정진흥원과 보건복지부 산하 아동권리보장원은 협약을 체결하고 다양한 이유로 부모와 분리된 아이들이 원만하게 원가정에 복귀할 수 있도록 하는 회복지원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경기, 충북 등 4개 지역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아이가 복귀를 희망하는 가정, 복귀 후 1년이 지나지 않은 가정을 대상으로 일대일 전문상담, 부모교육, 면접교섭 서비스, 가족관계개선 프로그램, 지역사회 자원연계 등 다양한 서비스를 지원한다.

아이가 원가정으로 안전하게 돌아가려면 분리된 원인에 따른 전문적인 부모 상담과 교육, 아이의 심리정서적 안정을 위한 치료, 부모와 아동의 주기적 만남을 통한 관계개선, 가족 회복을 위한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원가정으로 돌아간 뒤에도 아이가 안전하게 지내는지 지속적인 모니터링, 일대일 멘토링 등이 진행될 예정이다.

여성가족부는 이와 함께 임신·출산 시기 부모교육에 대한 정보 접근성을 강화하고 전국의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생애주기별 양육방법 등 부모교육, 가족관계 개선을 위한 프로그램을 활성화할 계획이다. 현재 별도로 운영되는 가정폭력 대응체계와 아동보호 체계의 연계 방법도 마련할 예정이다.


과거에 비해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부모의 친권이 아이를 보호하기보다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의 친권은 쉽게 가질 수 있을지 몰라도, 친권은 권리가 아니다.
아이를 보호할 의무여야 한다.

김희경 여성가족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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