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날개야 다시 돋아라

김용훈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7.23 17:31

수정 2020.07.23 17:31

[기자수첩] 날개야 다시 돋아라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 속 파일럿은 선망의 대상이다. 영화의 주인공 프랭크는 지금은 사라진 미국 항공사 팬암의 조종사를 사칭하며 위조수표를 현금으로 바꾼다. 창구 은행원들은 프랭크가 입고 있는 팬암 유니폼만 보고도 수표를 현금으로 바꿔준다.

대학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 가운데 제주항공에서 운항승무원으로 일하는 친구 A가 있다. 보잉 B737기종을 몬다. A가 언제부터 파일럿을 꿈꿨는진 모르겠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힘겹게 노력했는지는 너무 잘 안다.
요즘처럼 더운 날에도 강남역에서 이수역까지 뛰어다니며 체력을 키웠고, 공군 학사장교로 입대하려던 꿈이 좌절돼 힘들어하기도 했다. 육군에서 헬기를 몰던 A는 끝내 항공사 파일럿이란 꿈을 이뤄냈다.

며칠 전 이 친구와 문자를 주고받았다. 얼마 전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 인수합병(M&A) 계약을 파기할 수 있는 조건을 충족했다는 발표에 대한 기사를 두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이 친구가 뜬금없이 물었다. "근데 정규직 자르는 건 쉽지 않지?" 답변을 모를 리 없는 녀석이 굳이 한번 더 확인받고 싶어했다. 친구는 "요즘 회사가 힘드니까 별별 생각이 다 든다"고 말했다. "너 파일럿이야.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찜찜했다.

파일럿 중에서도 어렵게 취득한 자격과 직장을 한꺼번에 빼앗긴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제주항공으로 피인수를 기다려왔던 이스타항공 조종사들이다. 1년 전 인터뷰를 했던 이스타항공의 여성 기장 B씨도 A만큼이나 어렵게 파일럿이 됐다. 2009년 싱가포르항공 계열 항공사의 승무원이던 B씨는 조종사가 되고 싶어 1년 만에 사표를 던졌다. 비행시간을 채우려면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비행교관으로 일했다는 B씨는 5년을 노력해서 지난 2015년 부기장이 됐지만, 5년도 안돼 직장이 사라질 판이다.

코로나19 이전까진 국내 조종사 인력이 부족하다는 우려가 높았다. 중국 등에서 고액연봉을 제시하며 조종사들을 빼 간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랬던 조종사들이 이젠 실직을 겁내고 있다. 국내 항공업계의 구조개편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하지만 그 안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fact0514@fnnews.com 김용훈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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