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서민증세가 욕 먹을 일인가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7.27 17:32

수정 2020.07.27 17:57

복지 한국의 기틀 놓으려면
부자·꼼수 증세만으론 한계
文대통령이 공론화 길 트길
[곽인찬 칼럼] 서민증세가 욕 먹을 일인가
'사람이 먼저다'라고 말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중에서도 복지에 거는 기대가 컸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 정부가 복지한국의 기틀을 놓아주길 바랐다. 물론 성과도 있다. 병원에 가면 문재인케어 덕을 본다. 실업급여도 더 많이, 더 오래 받을 수 있다.


거기서 끝이다. 전국민 고용보험은 아직 꿈이다. 기틀은커녕 몇 군데 잔손질에 그쳤다. 그런데도 비판은 하늘을 찌른다. 정부는 해마다 추가경정예산을 짰다. 올해는 세번씩이나. 돈이 모자라면 국채를 찍었다. 그 바람에 나랏빚이 단숨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40%를 넘어섰다. 한국인의 재정건전성 집착은 유별나다. 후세 사가들은 문재인 통치기를 재정건전성 훼손기로 기록할지 모른다.

왜 이렇게 됐나. 땜질만 하고 정통 증세는 외면했기 때문이다. 복지엔 큰돈이 든다. 이상하게도 한국 정치는 이 자명한 진리를 자꾸 부정한다. 박근혜정부는 증세 없는 복지를 고집했다. 그리곤 뒤로 담뱃세 올리고, 연말정산 꼼수를 썼다. 문재인정부도 오십보 백보다. 주식으로 번 돈에 세금을 물리고, 종부세·양도세·취득세를 다 올리려 한다. 이런다고 복지가 송두리째 달라질까. 어림없다. 꼼수증세는 땜질에 불과하다. 복지 기틀을 놓기는커녕 세제만 누더기로 만든다.

재야 조세전문가인 장제우는 보편증세, 그중에서도 서민증세를 주창한다('장제우의 세금수업'). "중산층과 서민의 세금이 크게 늘어야 그들에게 이롭다" "간접세가 서민을 힘들게 한다는 망상에서 한시바삐 깨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파격적 주장이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 적지 않다. 그는 북유럽 스웨덴을 모델로 든다. 서민부터 부자까지 제몫의 세금을 내는 나라, 그 덕에 온 국민이 두루 복지 혜택을 누리는 나라가 스웨덴이다.

한국 정치인은 입만 열면 서민감세를 외친다. 장제우는 이를 위선의 정치로 본다. 서민을 아끼는 척하지만 사실은 자신을 위한 정치라는 것이다. 세금을 더 내면 "(유권자는) 정치를 대하는 눈높이가 달라지고…알아서 야무지게 정치를 감시하게 된다." 대충 살아온 한국 정치인들로선 근무여건이 여간 빡빡해지는 게 아니다. 게다가 증세는 득표에 마이너스다. 이러니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어느 정치인이 총대를 메겠는가.

나는 그 용감무쌍한 역할을 문 대통령이 해주길 바란다. 집권 3년이 지났으니 슬슬 힘이 빠질 때가 됐다. 권불오년 한국 정치에선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차라리 그게 낫지 싶다. 티격태격 일상사에서 벗어나 후세에 길이 남을 역작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손자병법은 '이겨놓고 싸우라'고 조언한다. 복지와 싸우려면 돈부터 쌓아야 한다. 하지만 빚은 짐이다. 국채를 찍어선 지속가능한 복지를 펼 수 없다. 서민부터 부자까지 골고루 내는 보편증세가 필요한 이유다. 소득세도 더 내고, 간접세인 부가가치세(소비세)도 두루 더 내야 북유럽형 복지의 터를 닦을 수 있다. 한국판 뉴딜의 한 축인 사회안전망도 결국은 돈이 성패를 가른다.

단박에 보편증세가 어렵다는 걸 누가 모를까. 증세는 말을 꺼내는 순간 욕을 바가지로 먹기 십상이다.
지금으로선 공론화의 주춧돌만 놓아도 대성공이다. 문 대통령은 3년 전 취임사에서 "제 가슴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뜨겁다"고 말했다.
아직 그 열정이 남아 있다면,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복지한국의 기틀을 놓는 데 선구자로 나서주길 바란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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