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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직업공무원 시대유감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8.05 17:54

수정 2020.08.05 17:54

[fn논단] 직업공무원 시대유감
"경제기획원은 아너러블(honorable)하고, 재무부는 파워풀(powerful)하며, 상공부는 컬러풀(colorful)하다"는 말이 인구에 회자되던 시절이 있었다. 1960년대 이후 개발경제연대에 경제운용의 방향을 이끌어온 경제기획원, 한정된 재원을 움켜쥐고 배분하던 재무부, 기업을 상대로 전면에 나섰던 상공부의 특징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공무원들에게는 신화로 남은 이 시대를 상징하는 일화도 여럿이다. 김학렬 전 부총리가 1969년 취임하자마자 포항종합제철 건설전담반을 설치하고 직원들을 불러다 세워놓고 "종합제철에만 매달려라…. (실패하면) 버스값은 내가 줄 테니 한강에 가서 빠져 죽어라"고 호통쳤다는 말은 당시 경제개발의 방법론을 보여준다.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전 대통령이 김재익 전 경제수석에게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라고 맡겨 오일쇼크와 물가폭등의 구렁텅이에서 경제가 회생했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보수 정치인들의 단골메뉴다.

권위주의 시대가 저물고 경제가 발전하면서 정부의 역할도 축소되거나 변화했다.
변화는 요구이면서 필연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행정부가 정치권력을 등에 업고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는 후진국 시스템이 용납되는 시대가 아니다. 민주주의가 정착되면서 국민의 요구를 효과적으로 반영해야 했기에 정치권의 정책참여도 당연해졌다. 경제규모와 수준이 정부가 장악하고 지도할 수 있는 범위를 훌쩍 넘어서면서 경제시스템도 시장 중심으로 재편될 수밖에 없게 됐다. 그러면서 화려한 훈장처럼 따라다니던 공무원들의 명예, 색깔과 힘은 자연히 스러졌다.

어딜 가나 아파트 값 걱정이다. 단초는 인구구조 변화가 주택시장을 지배하리라는 예측이 개인주의 확산으로 무너진 데 있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시민의 주거안정까지 위협받게 된 현실을 정책실패가 아니라고 정당화하기는 어렵다. 주택가격 안정화 방안을 두고 백가쟁명이지만, 논쟁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정치권이다. 여당과 야당, 청와대와 국회 간 논쟁의 프레임에서 공무원은 잘 보이지 않는다. 기껏해야 다주택 고위공무원에게 주택을 매각하도록 요구하는 대목 정도일까.

문제는, 경제정책의 정치적 위치와 지향점이 내용과 효과를 압도하는 순간 국민생활에 절실한 주택문제가 정치게임으로 변질되고 전문 테크노크라트는 머슴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이다. 과학적 합리성이 결여된 경제정책은 그 산물이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객관성과 합리성으로 무장한 행정가들로 구성된 관료제를 제안, 민주주의와 동반하는 현대 관료제의 토대를 닦았다. 그런데 그가 정치적 중립성을 내포한 정책전문가를 지칭한 '영혼없는 관료'가 지금은 정치권력에 휘둘리고 지친 공무원들을 일컫는 말로 사용되니 아이러니다.

경제개발연대에는 인재들을 고시로 뽑아 박봉에 혹사시켰다. 그래도 국가봉사의 보람과 성취의 기쁨이, 퇴직 후에는 경제적 보상이 따랐기에 열심히 일했다.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보수가 늘어나 중소기업 수준은 됐다지만 권위나 명예는 줄었고, 퇴직 후에는 엄격한 감시가 따른다. 이제 직업공무원을 사기업 임직원과 차별화해 열정을 다하도록 하는 것은 공직에 대한 긍지와 직업안정성뿐이다.
그것마저 간당거리는 요즘, 대단히 유감이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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