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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 사건 터질때만 반짝 관심… 아동법안 절반이 폐기됐다 [아동학대 더이상은 안된다]

김주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8.05 18:21

수정 2020.08.05 18:21

<2부> 뻥 뚫린 제도 인프라
3. 국회 ‘아동 법안’ 뒷전
온종일 아동 돌봄체계 운영 등
20대 국회서 258개 법안 발의
우선순위서 밀리며 166건 자동폐기
아동학대 가해자 처벌 강화 등
21대 국회서도 다양한 법안 발의
"이슈때만 쏟아지는 아동학대 법안
장기적 방향 세워 처리율 높여야"
학대 사건 터질때만 반짝 관심… 아동법안 절반이 폐기됐다 [아동학대 더이상은 안된다]
최근 충남 천안에서 의붓어머니가 아홉살 아이를 여행용 가방에 7시간 동안 가둬 숨지게 하는 사건이 발생해 국민 여론의 공분을 샀다. 충남 서산의 어린이집 교사는 네살 원아들을 상습 폭행한 사실이 밝혀져 제도 개선 요구가 빗발쳤다. 올해 초부터 이 같은 참혹한 아동학대 사건이 잇따라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지난 20대 국회 마지막 소임도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제도 개선 입법에 집중됐다. 하지만 여전히 제도적으로 미진한 점이 많아 새로 출범한 21대 국회도 어깨가 무거워 보인다.

■20대 국회서 아동법안 '166건' 폐기

5일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서 '아동'을 키워드로 검색한 결과, 지난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258개의 아동 관련 법안 중 166건이 20대 국회 폐회와 함께 임기만료 폐기됐다. 발의된 법안 중 절반가량은 국회에 그대로 잠들어 있다 폐기된 것이다.


물론 비슷한 법안이 여럿 발의될 수 있고, 여야 심사 과정에서 교통정리가 되는 만큼 숫자만으로 성적표를 따질 일은 아니다. 다만 아동학대를 근절할 주요 제도별로 이를 개선할 법안이 얼마나 처리됐느냐를 놓고 보면 여전히 낙제점 수준이라는 평가가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점에서 개선이 시급해 보인다.

대표적인 폐기법안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한 양육비 대지급 특별법(이완영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 대표발의)이다. 더불어민주당도 21대 총선 공약으로 해당 법안을 다시 제시한 바 있다.

양육비 대지급 제도는 비양육부모가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경우 국가가 우선적으로 양육부모에게 양육비를 먼저 지급하고 이후 비양육부모에게 양육비를 받아내는 제도다.

온종일 돌봄체계 운영·지원 특별법(박경미 당시 민주당 의원 대표발의) 역시 임기만료로 자동폐기됐다. 해당 법안은 최근 맞벌이가정 증가 등으로 아이돌봄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어, 범정부 차원에서 통합적인 온종일 돌봄체계를 구축하고 지자체가 주체가 돼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 밖에도 윤후덕 민주당 의원 등 여러 의원이 각각 발의한 아동학대범죄 형량 강화 법안 등도 논의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다행히 20대 국회 본회의 마지막 문턱을 넘은 법안들도 있다.

아동 관련 법안 중 가장 쟁점이 됐던 양육비 이행 강화법이 그중 하나다. 양육비를 받지 못해 아동이 생존권을 위협받을 수 있다는 취지에서 양육비 제공을 법 조항으로 의무화한 것이다. 그러나 최초 발의 당시 법안에 포함됐던 형사처벌과 출국금지, 신상공개 등의 고강도 제재는 빠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동청소년법 개정안, 일명 아청법도 20대 국회의 문턱을 겨우 넘겼다.

해당 법안은 성착취물 배포·제공 등에 대한 처벌과 성착취물 소지·시청에 대한 처벌을 상향토록 했다. 또 아동·청소년에 대한 강간·강제추행 등의 죄를 예비·음모하기만 해도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21대 국회서도 쏟아지는 아동법안

이처럼 20대 국회에서는 절반 가까운 아동법안들이 우선순위에서 뒷전으로 밀리면서 자동폐기됐다. 21대 국회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최근 아동학대 관련 주요 쟁점으로 꼽히는 법안 가운데는 민법 제915조에 명시된 부모가 친권행사를 명목으로 자녀에게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정부는 지난달 29일 민법에서 징계권 조항을 삭제하고 체벌금지를 명문화하는 민법 개정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앞서 신현영·양이원영·전용기 민주당 의원과 황보승희 미래통합당 의원도 이 같은 내용의 민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다만 전용기·황보승희 의원은 징계권 삭제와 더불어 친권자의 권리의무에 '훈육'이라는 표현을 새로 넣었다.

가해자 처벌 강화 법안도 주목을 끌고 있다. 전용기 민주당 의원은 아동학대 부모를 피의자 신상정보 공개대상에 포함해 신상을 공개하고, 자녀를 살해한 경우 7년 이상 징역으로 처벌 강도를 높이도록 했다. 같은 당 정춘숙·김원이 의원도 아동학대치사죄의 형량을 최대 무기징역까지 높였다.

조경태 통합당 의원은 아동학대범죄 처벌 특례법을 통해 아동학대 처벌에 공소시효를 폐지하자고 주장했다.

부모에 의한 아동학대 재발률이 높은 만큼, 이를 방지하기 위한 법안도 나왔다.

고영인 민주당 의원은 아동학대 가해 부모의 친권 상실·일시정지가 현행 2년으로 제한돼 있는데, 이를 폐지하고 사실상 친권을 상실토록 하는 법안을 제안했다. 또한 피해아동이 상담과 치료를 받은 뒤 가정에 복귀할 때 신속함보다는 아동의 안전성을 중심으로 판단토록 했다.

조명희 통합당 의원도 아동의 가정복귀 시 상담과 치료 결과에 따라 결정토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또한 20대 국회에서 이슈가 됐던 양육비 미지급을 법으로 처벌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전주혜 통합당 의원은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으면 출국금지와 신상공개를 하도록 했고, 신현영 민주당 의원도 정당한 사유 없이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것을 아동에 대한 금지행위로 규정하고 처벌토록 했다.
이외에도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은 아동학대 및 건강상태를 의사가 의무적으로 검진토록 하는 '아동 주치의 제도'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법안 발의에도 국회가 마지막까지 책임 지고 관련 법안을 입법까지 마무리 짓지 못하면 지난 20대 국회 상황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아동학대 이슈가 있을 때만 반짝 법안을 낼 것이 아니라 장기적 방향성을 가지고 아동학대 근절을 위해 법안 처리율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ju0@fnnews.com 김주영 전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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