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또 진보의 무능인가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8.10 16:55

수정 2020.08.10 17:12

촛불로 정권 잡았지만
부동산으로 실력 들통
왕고집에 민심도 떠나
[곽인찬 칼럼] 또 진보의 무능인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는 순 날강도다. 그의 이름은 '잡아당겨 늘이는 자'라는 뜻이다. 그의 집엔 쇠침대가 있었다. 나그네를 집으로 끌어들인 뒤 침대보다 작으면 몸을 억지로 잡아늘였다. 침대보다 크면 다리를 잘랐다. 여행자들은 공포에 떨었다.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흡사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연상시킨다. 정책을 시장에 맞추는 게 아니라 시장더러 정책에 맞추라 한다. 정책이라는 침대보다 크거나 작으면 가차없는 처벌이 기다린다. 스물세번에 걸쳐 수위가 점차 높아졌다. 최근에 나온 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상한제, 종합부동산세·양도세·취득세 인상 카드는 응징 종합세트다. 이게 끝이 아니다. 지금 추세라면 문 정부 임기 말까지 부동산 대책이 적어도 서른번 넘게 나올 것 같다.

정책엔 오차가 따른다. 비용과 편익을 저울질해서 짜는 정책에 오차가 없을 수 없다. 문제는 오차범위다. 집값 안정을 목표로 하는 정책을 줄줄이 내놨다. 그런데 집값은 되레 껑충 뛰었다. 경실련은 문재인정부 때 서울 집값이 이명박·박근혜정부 때보다 더 올랐다고 주장한다. 23회에 걸친 대책은 분명 오차범위를 벗어났다. 편익보다 비용이 더 크다. 다른 말로 하면 정책 실패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은 가던 길을 고수한다. 이건 일관성이 아니라 옹고집이다.

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정치와 이념에 찌들었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부동산 폭등은 이명박·박근혜정부 9년간 누적된 부양정책 때문"이라고 했다. 윤호중 법사위원장은 부동산 법안을 무더기로 통과시킨 뒤 "대한민국 국민이 평생 집의 노예로 사는 것을 벗어난 날"이라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의원이 본회의 5분 연설로 떴다. 이유가 궁금해 연설문을 되풀이 읽어봤다. 아하, 알겠다. 연설에 정치가 없다. 이념도 빠졌다. 자본주의, 사회주의, 자유, 분배 따위 구름 잡는 단어가 보이지 않는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이름도 나오지 않는다. 대신 그는 임대인과 임차인의 상생, 전세제도의 소멸 등을 상식선에서 설명했다. "임차인 보호에 적극 공감한다"면서 "임차인 보호 강화는 국가의 부담으로, 즉 임대인에게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면서 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행동경제학의 대가인 리처드 탈러 교수(시카고대)는 명저 '넛지'(2008년)에서 인센티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넛지는 옆구리를 쿡 찌르는 것을 말한다. 몽둥이를 들면 겉으론 따르는 척하지만 속으론 군시렁댄다. 말을 강가로 끌고갈 순 있어도 억지로 물을 먹일 순 없다. 넛지는 강물에 당근을 담가두는 전략이다. 넛지는 요란하지 않다. 하지만 효과는 만점이다. 임대인은 전세, 월세 물량을 시장에 공급한다. 이런 사람을 공공의 적으로 취급하면 임대시장은 삐걱댈 수밖에 없다.

규제는 종종 역설에 빠진다. 최성락 교수(동양미래대)는 '규제의 역설'에서 "왜 좋은 의도로 만든 정책이 나쁜 결과를 가져올까"라고 묻는다. 소득을 감소시키는 최저임금제, 실업자를 늘린 비정규직보호법, 일자리를 없앤 강사법 등이 그런 예다.
여기에 임차인을 더 힘들게 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을 추가한다.

악당 프로크루스테스는 어떻게 됐을까. 천하의 망나니도 제2의 헤라클레스를 꿈꾸던 청년 영웅 테세우스를 당할 수는 없었다.
테세우스는 프로크루스테스를 잡아 침대에 눕힌 뒤 그자가 한 짓 그대로 처치했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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