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한미재무학회칼럼

[한미재무학회칼럼] 집값 오르면 성장에 발목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8.11 17:40

수정 2020.08.11 18:12

[한미재무학회칼럼] 집값 오르면 성장에 발목
최근 영국의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주거용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많은 선진국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특집기사를 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국가에서 주택소유를 장려하는 정책을 쏟아냈다. 특히 1940년대 중반 미국에서는 재향군인에게 주택가격의 100%를 대출해주는 파격적인 정책을 시행했다. 다방면의 주택보유 장려정책으로 1940년부터 2000년 사이 미국 국민의 주택보유율은 45%에서 70%로, 영국 국민의 주택보유율은 30%에서 70%로 급상승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전 세계적 초저금리는 주택담보대출의 증가와 주택가격의 급등으로 이어졌고,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는 전 세계 금융시스템의 붕괴로 이어졌다.

금융위기 이후 십수년이 지난 지금 다시 전 세계가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혹자는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국민의 부가 늘어나고 소비가 늘면 경기가 좋아지지 않겠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 연구보고서는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인한 경기부양 효과는 단기적이고 국지적이라는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부동산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할 때 많은 주택구매자와 투자자들이 더욱 많은 부채를 지고서라도 부동산 구매를 서두르게 되고, 장기적으로는 높은 이자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소비를 줄이고 결과적으로 경제성장이 둔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파르게 상승하는 부동산 가격이 경제성장을 둔화시키는 더 큰 이유는 국가의 인적·물적 자원의 생산적 배분을 저해하고 계층 간, 세대 간 위화감을 조성하는 데 있다. 뛰어난 재능과 기발한 아이디어가 있는 젊은이가 주택담보대출로 엄청난 이자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서 쉽게 벤처기업을 창업할 수 있을까. 실제 영국 국민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의하면 주택담보대출의 상승이 창업의지를 20~30% 감소시킨다고 한다(Bracke, Hilber, Silva 2018). 부동산으로 유입된 자금은 그곳에 머물러 있지만, 기업으로 유입되는 자금은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고 시장을 개척하는 데 쓰일 수 있다. 미국의 베이비부머가 30대 중반이던 1990년에는 미국 전체 주거용 부동산의 30%가 이들 소유였다. 밀레니얼 세대라고 불리는 베이비부머의 자녀들이 30대 중반이 된 지금 밀레니얼들은 미국 전체 주거용 부동산의 4%만 소유하고 있다. 높은 부동산 가격을 감당할 수 없어서다. 부유한 부모의 도움이 아니면 집을 구할 수 없다는 한탄은 한국과 미국을 막론하고 세대 간, 계층 간 위화감과 불신을 반영한다. 이러한 사회적 위화감으로 미국에서는 '밀레니얼 사회주의' 운동까지 언급되고 있다.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한 방법에는 수요억제와 공급확대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수요억제 정책은 여러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많다.
많은 편의시설과 일자리를 갖춘 지역으로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을 인위적으로 저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미국의 뉴욕과 샌프란시스코로 회사와 사람들이 몰리고, 한국의 강남으로 기업과 학부모들이 이사 가는 것을 정책적으로 금지할 수 있을까. 최근 영국, 독일, 캐나다에서 그린벨트 해제를 비롯한 주택공급 제약 정책을 재검토하는 것은 많은 나라들이 주택공급확대 정책을 선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연구결과에 의하면 미국의 뉴욕, 샌프란시스코, 산호세 세 군데에 주택공급이 충분히 이루어진다면 미국 전체 국내총생산이 10% 상승할 것이라고 한다(Hsieh and Moretti, 2017). 다소 충격적인 결과이지만 그만큼 주택가격 상승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이 크다는 방증일 것이다.

김회광 美 사우스캐롤라이나주립대 교수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