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대기업은 벤처에 투자할 준비가 됐을까

한영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8.13 17:16

수정 2020.08.13 17:28

[기자수첩] 대기업은 벤처에 투자할 준비가 됐을까
벤처업계에 오랜 기간 종사한 대학교수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 교수는 "10여년 전 카카오톡이 막 생겨날 무렵, 스마트폰을 만들기 시작한 국내 대기업에 카카오톡을 인수하면 좋을 것 같다는 제안을 한 적이 있다"며 "결국 그 대기업은 자체적으로 SNS를 개발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고 전했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을 주도하는 대기업의 스마트폰에 카카오톡이 내장 앱으로 사용됐다면? 지금쯤 카카오톡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과 경쟁하는 글로벌 SNS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10년이 지난 지금, 대기업은 벤처에 과감히 투자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그동안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던 대기업은 최근 '기업형벤처캐피털(CVC)'을 대안으로 내세웠다. CVC는 대기업이 출자한 벤처캐피털(VC)이다. 대기업은 벤처캐피털 계열사를 통해 스타트업에 투자할 수 있다.


하지만 CVC가 대기업이 벤처에 투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까. 벤처투자업계에 따르면 대기업이 벤처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방법은 △직접투자 △사내벤처 △운용사 설립 △기관투자자로 참여 등 4가지나 된다. 지금도 사내벤처는 많은 대기업들이 활발히 육성하는 편이다.

국내에서 허용되지 않은 벤처투자 형태는 '운용사 설립' 방식이다. 이 방식도 모든 기업이 허용되지 않는 건 아니다. 지주회사가 아닌 경우 CVC를 설립할 수 있다. 실제로 지주사 체제가 아닌 삼성이나 카카오 등이 CVC를 운영하고 있다.

즉, CVC가 허용되지 않아서 대기업이 벤처에 투자하지 못한다는 주장은 어폐가 있다. 앞서 말한 이야기를 해준 교수는 "제도가 가로막고 있어서 대기업이 벤처에 투자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이 아직 벤처에 과감히 투자할 마음의 준비가 돼있지 못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최근 대통령이 직접 CVC 허용을 주문하면서 CVC는 곧 법제화될 전망이다. 그러나 CVC는 대기업의 유일한 대안이 아니다.
대기업들이 기관투자자(LP)로 투자에 간접 참여하며 노하우를 쌓고, 인수합병(M&A) 등 직접투자에도 더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희망한다.

fair@fnnews.com 한영준 산업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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