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이유있는 2030세대의 '패닉바잉'

박지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8.24 18:24

수정 2020.08.24 20:35

[기자수첩] 이유있는 2030세대의 '패닉바잉'
최근 부동산 투자에 꽤 성공했다는 지인은 나에게 영화 '국가부도의 날'을 봤는지 넌지시 물었다. 영화를 재밌게 봤다고 답하자 그는 "그 영화를 보고 아직도 집을 안 샀어요?"라고 되물었다.

그의 말인즉슨 영화는 줄곧 "(국가를) 의심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고, 현 상황에 적용해 보면 정부가 집값을 잡을 것이란 말 역시 그대로 믿어서는 안된다는 결론을 얻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안이 벙벙했다. 물론 요새 가장 많이 하는 후회는 2017년 결혼할 때 왜 집을 사지 않았는지다. 그 당시도 집값이 많이 올랐다고 생각했고, 정부가 안정시킬 것이라 철썩같이 믿고 일단 전세를 얻었다.
그러나 나의 기대와 달리 수십차례의 대책에도 집값은 계속 고공행진하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삼호어묵이 쓴 '정부가 집값을 안 잡는 이유'라는 글이 화제다. 정부가 22차례 내놓은 부동산 정책이 왜 자꾸 실패하는지, 정부의 진짜 목적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다. 그는 "정부는 국민이 자가 보유하기를 원하지 않아 임대공급에 힘쓴다"며 "정부 입장에서는 집값이 오르면 세수가 오르고, 표밭이 유지되니 집값을 잡을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 글이 화제가 된 이유는 모든 국민이 의문을 품었던 정부가 집값을 왜 못 잡는지를 가장 그럴듯하게 설명해주었기 때문이다.

글을 읽고 나선 "믿은 내가 바보였나"라는 허탈감이 들었다. 그러나 초저금리 시대이기 때문에 풀린 유동성이 부동산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며, 대책 효과 역시 시차를 두고 나타날 수 있어 아직은 속았다고 판단하기는 이르다는 자기합리화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도 잠깐. 의심이 사그라질만 할 때 불씨는 다시 타올랐다. 집값을 잡겠다고 호언장담하던 고위공직자들의 상당수가 사실은 다주택자였던 것. 공분을 사자 솔선수범해 주택을 처분하는 움직임이 이어졌다. 그러나 화룡정점은 다주택자 신분을 포기하는 대신 청와대 수석 신분을 포기하는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졌다. 이쯤 되니 속은 게 맞는 것 같다는 허탈감이 밀려왔다.

당장 인터넷뱅킹을 켰다.
신용대출 한도조회를 하고 가용자산을 모아 '영끌' 시나리오를 짜기 시작했다. 신용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데 쓰면 안된다고 하지만 그 역시 믿으면 바보인 세상이다.
30대 '패닉바잉'을 목전에 두고 잠이 오지 않는 날이 몇 주째 이어지고 있다.

aber@fnnews.com 박지영 건설부동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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