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일반

"알츠하이머 아내 돌보는 내 마음이 더 단단해지도록 기도한다" [Guideposts]

정순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9.01 17:16

수정 2020.12.24 10:41

아픈 배우자 위해 목회자의 길 접은 놈 스톨페
아내가 병을 진단받은지 3년…
끝없는 환각증세에 나자신도 겁이 났다
두려움을 없애준 것은 가족과 친구
그리고 습관처럼 읽던 시편 구절이었다
아직도 스크래블을 척척 해내는 아내
하나님의 신의가 함께한다는 걸 느낀다
남은 생이 얼마든 내가 할 일은 단하나
즐겁고 만족스러운 삶을 이어가는 것
은퇴목사인 놈 스톨페(오른쪽)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아내를 돌보는 것이다. 매일 시편을 읽는다는 그는 "시간이 얼마 남아있든 간에 내가 아내를 위해 하는 일은 아내가 세 아들을 키우고 내가 목사로 있는 동안 날 지지해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은퇴목사인 놈 스톨페(오른쪽)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아내를 돌보는 것이다. 매일 시편을 읽는다는 그는 "시간이 얼마 남아있든 간에 내가 아내를 위해 하는 일은 아내가 세 아들을 키우고 내가 목사로 있는 동안 날 지지해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보드게임의 일종인 스크래블을 즐기는 스톨페 목사 부부.
보드게임의 일종인 스크래블을 즐기는 스톨페 목사 부부.
나는 매달 시편을 이용해 기도드리는데, 목사가 되기 전부터 매일 몇 구절씩 읽는 습관을 지켜왔다. 이제 나는 은퇴했고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아내 캔디를 돌보는데, 시편에는 우리 부부가 해나가는 일을 언급하는 한두 구절이 거의 매일 있다.


"내게 줄로 재어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편 16:6, 11)

캔디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처음 만난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 아내는 미네소타에 있는 작은 대학의 학생이었고, 나는 3학년 때 그곳으로 편입했다. 학교에서의 첫날, 아침을 먹으려고 카페테리아에 가서 캔디가 있던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캔디는 내게 어디 출신인지 물었고, 나는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라고 대답했다. 어쩌다 내가 미네소타주 세인트폴까지 왔지?

나중에 안 일이지만, 공항에서 날 태워서 학교까지 데려다준 사람은 캔디가 다니던 교회의 목사였다. 그는 캘리포니아에서 내가 다니던 교회의 청년부 목사로 있었기 때문에 나도 잘 알았다. 게다가 당시 고향에 있던 교회의 목사는 한참 전에 캔디의 부모님 결혼식에서 주례를 맡기도 했다. 이야기가 좀 얽히고설켜 있지만, 아내는 언제나 세부사항을 정확히 기억하며 수사적인 질문으로 끝을 맺는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어 주셨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가 처음 만난 일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기억 중 하나다. 아내가 그때를 다시 이야기하는 걸 들을 때마다 나는 기쁨과 감사로 가득 찬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시편 23:4)

시편 23편은 성경에서 가장 유명하며 사랑받는 구절이다. 킹제임스성경의 시편에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고 되어 있으나 나는 좀 더 최근의 해석인 "어둠의 골짜기"라는 표현을 더 좋아한다. 알츠하이머병과 함께하는 경험을 아주 정확히 표현하기 때문이다. 3년 전에 아내의 진단으로 이어졌던 일을 예로 들어 보자.

당시 나는 댈러스의 우리 집에서 290㎞가량 떨어진 텍사스주 올버니에서 임시 목사직을 맡고 있었다. 올버니에서 일박을 하는데 댈러스에 있는 UPS 물류센터에서 전화가 오는 바람에 잠에서 깼다.

"목사님 부인이 여기 계세요. 와서 데려가실 수 있나요?"

아내는 꼭두새벽에 머릿속에서 음악 소리를 듣고는 집을 나와 1.6㎞ 이상을 헤매면서 음악이 어디에서 들려오는지 알아내려고 했다.

캔디는 입원해서 검사를 받았다. 아내를 괴롭힌 환각이 알츠하이머병 때문임을 알아냈다.

약을 먹어도 환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캔디는 다락방에서 소리를 듣거나 지붕 위에서 음악을 들었다. 안심시키려고 애썼지만 가끔은 나 자신도 아내처럼 겁에 질렸다.

두려움을 몰아낸 것은 가족, 의사, 친구, 내가 참석하는 알츠하이머협회 간병인협력단체처럼 다른 이들이 보낸 위로였다. 이 어둠의 계곡에서 나는 계속해서 말할 수 있었다.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를 속량하셨나이다."(시편 31:5)

성금요일 예배에 참석해 봤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뒤 말씀하신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를 알아차릴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실 때도 이 구절을 인용하셨다는 사실은 모를 거다. 내 예배에 참석하는 신도가 살면서 맞닥뜨린 상황을 나도 어찌할 수 없을 때, 시편 31편 5절이 내면의 평화를 유지하도록 도와주었다.

아내가 진단을 받은 후 우리 생활은 뒤바뀌었다. 나는 종일 아내를 돌볼 수 있도록 목사직을 내려놓았다. 밀워키로 이사해서 가족과 좀 더 가까이 있기로 했다. 규모를 줄이고 새로운 교회와 의사를 찾아야 했다. 변화가 가져온 스트레스는 막대했다. 여러 번 되풀이해서 기도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밀워키까지 챙겨온 한 가지는 스크래블(철자가 적힌 플라스틱 조각으로 단어를 만드는 보드게임) 게임판이었다. 알츠하이머병은 다양한 방식으로 뇌를 공격했지만, 캔디는 지금도 스크래블을 끝내주게 잘한다. 앉아서 게임을 하는 밤마다 하나님의 신의가 함께한다는 걸 느낀다.

"늙을 때에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 힘이 쇠약할 때에 나를 떠나지 마소서."(시편 71:9)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 그것은 사랑하는 아내보다 오래 살지 못해서 돌볼 수 없게 되는 일이다. 나의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 모두 일흔을 넘기지 못하셨다. 아버지는 83세까지 사셨는데, 13년을 '보너스 시간'이라고 하셨다. 지금 나는 72세이니 이미 보너스 시간 2년을 써 버렸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나이 먹었다고 느끼지 않으며 그렇게 보이지도 않지만, 삶에서 어느 지점에 있고 하나님께 힘을 얼마나 의지하는지 인정하는 일은 중요하다. 나는 나 자신을 챙긴다. 스트레스에 대처하고자 카운슬러를 만나고 제대로 먹으며(특히 과일과 채소를 많이) 개와 한참 산책하면서 규칙적으로 운동한다.

아내와 함께하는 일도 한다. 내가 상근 목사로 일할 때는 아내가 장보기를 모두 해냈는데, 우리 가족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교회를 위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저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서 회의나 청년회를 위한 음식을 마련해 달라고 부탁했을 뿐이다. 그러면 아무 문제 없었다.

이제 우리는 함께 쇼핑을 하는데, 그건 내가 아내의 방식으로 일해야 한다는 뜻이다. 나는 재빨리 움직이는 걸 좋아하지만, 아내는 모든 통로를 따라 걸으며 눈길을 사로잡는 것들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계산대 줄에서 누군가를 만나면 한참 전에 미네소타주의 대학에서 남편을 어떻게 처음 만났는지 얘기해주고 싶어한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게 하사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시편 90:12, 17)

고등학교 다닐 때 훌륭한 작가가 되고 싶었다. 내가 죽고 나서도 사람들이 읽을 만한 의미 있는 작품을 쓰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목사로 일하는 동안, 설교하거나 가르치거나 상담하는 등 다른 방법으로도 변화를 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와 함께 일하며 또한 내게 잊히지 않는 기억을 남기는 사람들 안에서 모습을 갖춰가는 내 일을 견고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방법도 있었다.

나의 돌봄은 교회 신도를 보살피는 일에서 아내를 보살피는 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내 일을 견고하게 해주십사 하나님께 기도드린다. 나는 다른 사람들 틈에서 본보기가 될 만한 이를 찾는다. 마지막으로 목사직을 맡았을 때, 성가대 지휘자의 아내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렸다. 지휘자는 놀라운 신의와 관대함으로 아내를 돌봤다. 부부는 데어리퀸에 가서 아이스크림콘을 먹는 것 같은 간단한 일들을 함께했다. 남편이 교회에서 지휘할 때면 아내는 종종 그 곁에 서 있었다. 지휘자에게는 시간을 잡아먹는 다른 일이 매우 많았지만, 아내의 요구사항은 의심의 여지없이 최우선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든 간에 내가 아내를 위해 하는 일은 무엇이든지 아내가 세 아들을 키우고 내가 목사로 있는 동안 날 지지해준 것에 비하면 보잘것없다. 내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는 것? 아내의 여정에 놓인 이 힘든 나날들이 가능한 한 즐겁고 안정적이며 만족스럽게 흘러가도록 하나님께서 날 쓰시기를 바란다.

'가이드포스트(Guideposts)'는 1945년 노먼 빈센트 필 박사에 의해 미국에서 창간된 교양잡지로, 한국판은 1965년 국내 최초 영한대역 잡지로 발간되어 현재까지 오랜 시간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가이드포스트는 실패와 좌절을 딛고 다시 일어선 사람들, 어려움 속에서 꿈을 키워가며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들의 감동과 희망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런 감동의 이야기를 많은 분들의 후원을 통해 군부대, 경찰, 교정시설, 복지시설, 대안학교 등 각계의 소외된 계층에 전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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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가이드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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