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더 큰 혜택이 낳은 더 큰 차별

이진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9.03 18:05

수정 2020.09.03 18:05

[기자수첩] 더 큰 혜택이 낳은 더 큰 차별
"육아휴직? 눈치보여서 쓰지도 못해."

얼마 전 쌍둥이 자매를 낳은 친구의 말이다. 시간대를 바꿔가며 우는 딸들 때문에 친구는 석 달 동안 제대로 잠에 들지 못했다. 그가 직장에 나가면 부인은 더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는 아이를 낳고 3일간의 휴가만 받았다. 그가 빠지면 회사가 굴러가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육아휴직은 당연히 먼 나라 이야기다.


정부는 지난달 27일 저출산대책을 마련하며 유연하게 육아휴직을 할 수 있도록 3회에 걸쳐 사용횟수를 확대했다. 정부는 해당 제도를 설명하며 '직장인 남성 A씨'를 예로 들었다. 그런데 핵심은 분할이 아니다. 과연 '휴직'을 쓸 수 있느냐다.

여기서 공무원과 민간인의 차등이 존재한다. 공직의 경우 2008년 여성 공무원 육아휴직 기간이 1년에서 3년(유급 1년+무급 2년)으로 늘어났다. 남성 공무원은 2015년부터 육아휴직을 3년까지 쓸 수 있다. 하지만 민간기업은 육아휴직 1년(유급) 보장만 의무화돼 있다.

이 또한 중소기업 근로자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8월 발표한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에 따르면 10~29인 사업체의 육아휴직자 비율은 7.3%에 불과했다. 30~99인 사업체도 11.0%에 머물렀다. 경력단절, 소득 감소, 승진·평가 불이익 등은 여전히 근로자가 육아휴직을 주저하는 이유다.

어쩌면 더 많은 혜택이 더 많은 차별을 불러일으킨다. 자유롭게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대기업 근로자 대비 중소기업의 차이는 더욱 커진다. 실제 정부는 정책을 발표하며 육아휴직을 실시한 기업에 월 10만원가량을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10만원을 받기 위해 '굴러가지 않을' 회사를 만들 사업주는 없을 게 분명하다.


2018년 국가공무원의 육아휴직자 비율은 민간기업 육아휴직자의 약 7배에 달했다. 공무원들이 사는 세종시가 언제나 출산율 1위를 기록하는 것을 보면 육아휴직이 저출산 완화에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취업준비생 36%가 공무원을 준비하려는 이유는 민간과 공직 사이에 존재하는 '삶의 질' 간극 때문일 테다. 간극을 벌리는 자는 누구인가. '사각지대'에 대한 고민보다 혜택만 늘리는 정부 아닐까.

beruf@fnnews.com 이진혁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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