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코로나 시대에 사생활은 사치인가

파이낸셜뉴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9.07 18:05

수정 2020.09.07 18:05

방역 최우선 인정하지만
전체주의적 감시는 안 돼
하라리의 경고 되새길 때
[곽인찬 칼럼] 코로나 시대에 사생활은 사치인가
"지금 내가 몇 개의 손가락을 펴고 있나?" 오브라이언이 윈스턴에게 물었다. "네 개입니다." "그럼 당이 네 개가 아니라 다섯 개라고 말하면 몇 개가 되지?" "네 개입니다." 대답을 하자마자 고통이 엄습했다. 다이얼의 바늘이 55를 가리켰다. 숨이 가빠지고 이를 악물었는데도 신음이 터져 나왔다.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이 쓴 '1984'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윈스턴은 빅 브라더에 대항하는 맹랑한 인물이다. 사상경찰 오브라이언이 이런 불순분자를 그냥 둘 리 없다. 24시간 텔레스크린으로 윈스턴을 감시하던 오브라이언은 전기고문을 통해 윈스턴을 온전한 인물로 개조시킨다. 빅 브라더 사회에서 손가락 숫자는 당이 정한다. 당이 네 개라고 하면 네 개, 다섯 개라고 하면 다섯 개다.

코로나 퇴치에 온 국민이 열과 성을 다하는 이때 '1984'를 말하는 게 불순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미리 말해두거니와 지금 최우선 과제는 바이러스 박멸이다. 나 역시 방역당국에서 오는 긴급문자를 고맙게 열어본다. 지난 5월 이동통신 3사가 서울 이태원 클럽 근처에 있던 1만명 명단을 뽑아 방역당국에 넘겼을 때, 8·15 광화문 집회 명단 5만명 명단을 넘겼을 때도 당연하게 여겼다. 왜? 방역이 제일 중요하니까.

그런데 요 며칠 카페에 들를 때마다 왠지 마음이 불편하다. 카푸치노 한 잔 마시는 데 이름과 전화번호부터 적어야 하기 때문이다. 점심 먹으러 곰탕집에 들렀을 때도 마찬가지다. 카페 명부엔 벌써 이름이 빼곡하다. 회사 근처 카페라 아는 사람 이름도 보인다. 오호, 이 친구가 나보다 먼저 이 카페를 다녀갔구만. 가만 있자, 그럼 내 동선도? 그때 퍼뜩 프라이버시 생각이 들었다.

진보성향의 민변은 7월 말 보건복지부 장관과 질병관리본부장·서울시장·서울경찰청장을 상대로 헌법소원을 냈다. 이태원 발병 때 개인의 휴대폰 기지국 접속정보를 수집한 게 위헌이라는 취지에서다. 민변은 "헌법재판소가 감염병의 공포 아래 희미해지는 헌법의 가치를 바로 세우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민변은 진짜 진보 시민단체 맞다.

'사피엔스'로 유명한 유발 하라리 교수(예루살렘히브리대)는 지난 3월 파이낸셜타임스 기고에서 전체주의적인 감시사회의 도래를 경고했다. 코로나 시대 정부는 마음만 먹으면 전 국민 이동경로를 낱낱이 파악할 수 있다. 명분도 있고 기술도 있다. 하라리 교수는 대표적인 나라로 중국을 꼽는다. 사생활 존중은 코로나 잡은 뒤에 원위치하면 되지 않을까? 하라리는 고개를 젓는다. 비상조치는 생명력이 길다. 이스라엘은 1948년 독립전쟁 때 푸딩을 만드는 특별규칙을 강제했다. 이 규칙은 2011년에야 폐지됐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온라인 뉴스 유료정책을 고수하지만 하라리의 기고만은 무료로 열어놨다. 의미심장하다.

원래 한국은 개인보다 공동체를 우선하는 사회다. 소설가 장강명은 '한국이 싫어서'에서 "애국가 가사 알지? 하느님이 보우하는 건 내가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야"라고 말한다. 더욱이 한국 진보정권은 큰 정부를 좋아한다. 공무원도 더 뽑고, 재정도 팍팍 쓴다. 노무현정부가 그랬고, 문재인정부도 다르지 않다.
코로나는 큰정부주의자들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다.

정리하자. 코로나는 잡아야 한다.
하지만 방역을 빌미로 행여 국가가 사생활 영역에 너무 깊숙이 들어온 건 아닌지 한번쯤은 돌아보자.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면서 코로나를 퇴치해야 그게 진짜 K방역이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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