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아동·청소년 성범죄에 관대한 법원… 시민들이 분노했다

구자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9.13 17:19

수정 2020.09.13 18:10

초범·반성 이유로 솜방망이 처벌
전자장치·신상정보도 공개 안해
'손정우 송환 불허' 분노한 네티즌
뉴욕 타임스퀘어에 고발 광고도
法, 디지털성범죄 양형 강화 추진
세계 최대 규모의 아동 성착취물 공유사이트 '웰컴투비디오' 운영자 손정우씨와 손씨에 대한 미국 송환 불허 결정을 내린 한국 사법부를 규탄하는 광고가 지난달 31일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전광판에 실렸다. 성범죄 관련 판결에 분노하는 네티즌 단체 '케도아웃'이 모금을 통해 비용을 조달했다. 케도 아웃 트위터
세계 최대 규모의 아동 성착취물 공유사이트 '웰컴투비디오' 운영자 손정우씨와 손씨에 대한 미국 송환 불허 결정을 내린 한국 사법부를 규탄하는 광고가 지난달 31일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전광판에 실렸다. 성범죄 관련 판결에 분노하는 네티즌 단체 '케도아웃'이 모금을 통해 비용을 조달했다. 케도 아웃 트위터
법무부는 지난 4월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성범죄를 근절하기 위해 처벌 수위를 끌어올리고 법률을 개정하는 등 형사사법 정책의 '대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밝혔다. 그간 성범죄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응이 너무 미온적이었음을 반성하고 성범죄 범인을 끝까지 추적해 엄벌하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작 법원에서는 여전히 솜방망이 처벌이 잇따르고 있다. 화가 난 여성들은 해당 판결을 내린 판사를 비판하는가 하면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등에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 손정우의 형량을 비판하는 광고를 내보내기도 했다.

전자장치·신상정보 공개 않고 집유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아동·청소년을 상대로 한 성범죄에도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판결이 잇따라 많은 이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9부(김창형 부장판사)는 채팅 앱을 통해 알게 된 당시 만 11세 초등학생을 성적으로 학대하고 성관계까지 한 남성들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또 성폭력 치료강의 40시간 수강과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과 장애인 복지시설에 3년 간 취업제한 명령을 내렸다.

다만 재판부는 성범죄 재범 가능성을 단정하기 어렵다며 A씨 등에 대한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명령을 하지 않았다. 또 성범죄 전력이 없어 인터넷 신상정보 공개를 면제했다. 재판부는 "A씨와 B씨가 피해자에게 각각 4000만원과 500만원의 합의금을 지급하고 합의해 피해자 측이 두 사람에 대한 처벌을 원치 않고 있는 점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13세 여자친구를 성매매에 나서도록 하고 돈을 받아 챙겨 실형을 선고받은 20대가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일도 있었다.

지난달 28일 대전지법 형사1부(윤성묵 부장판사)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알선 영업행위 등) 혐의로 기소된 A씨(22) 항소심에서 징역 10월의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범행을 모두 시인하는 피고인이 4개월여 구금 생활을 통해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있다"며 "피해자에 대한 성매매 권유 정도가 그리 강했던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어 "피고인 나이나 범행 경위 등을 두루 살필 때 원심 형은 너무 무거워 부당하다"고 감형이유를 설명했다.

솜방망이 처벌에 분노한 여론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운영 손정우는 한국에서 고작 18개월형을 받았다. 피해자들이 정의를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

성범죄 관련 판결에 분노하는 네티즌들은 해당 판사들에 대한 비난과 신상 공유를 하는가 하면 최근에는 이처럼 타임스퀘어에 광고까지 게재했다. 지난달 31일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전광판에는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 손씨와 손씨에 대한 미국 송환 불허 결정을 내린 한국 사법부를 규탄하는 광고가 내걸렸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모인 단체 '케도아웃(KEDO OUT)'은 "한국 사법부가 손씨에게 내린 솜방망이 처벌을 세계에 고발하기 위해 모금을 진행했고, 9월 6일까지 타임스퀘어 전광판에 고발 광고를 게재하게 됐다"고 밝혔다.

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인 장윤미 변호사는 "아동·청소년 음란물의 경우 무기징역 또는 징역 5년 이상인데 이 정도면 살인과 거의 동일한 수준으로, 법정형이 굉장히 높은 편"이라며 "다만 성범죄의 스펙트럼이 워낙 다양하기에 횟수, 경위 등을 헤아리다 보니 국민 법 감정과 정서에 안 맞는 판결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사안마다 특성이 워낙 다르다 보니까 몇몇 판결을 두고 법원이 성범죄 처벌에 무관심하다고 일괄적으로 단정짓긴 어렵다"면서 "피해자의 합의 여부도 굉장히 중요한 양형 요소인데, 피해자가 합의 후 선처 의사가 있다 하더라도 이를 반영하면 안 된다는 의견도 있는 등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대법원은 디지털 성범죄의 양형 기준을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14일 전체회의를 열고 각각 범죄의 설정 범위, 형량 범위 등을 심의한 뒤 기준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최근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2014년부터 2018년까지 디지털성범죄 관련 1심 징역형 선고 1823건을 조사한 결과,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제작·배포 등의 혐의로 기소돼 실형을 선고받은 비율은 12%뿐이었다.

solidkjy@fnnews.com 구자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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