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아몰랑 재정학파를 아십니까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9.21 18:17

수정 2020.09.21 18:17

산타 흉내내는 文정부
더 화끈한 이재명 지사
고통분담 참 용기 실종
[곽인찬 칼럼] 아몰랑 재정학파를 아십니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모두 3형제다. 큰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는다. 그런데 이 아버지란 인물이 천하의 밉상이다. 한 여자를 두고 큰아들과 연적으로 경쟁했으니 말 다했다. 도스토옙스키는 "이 노인의 모든 도덕률은 '내 뒤에야 대홍수가 나든 말든'입니다"라고 썼다. 18세기 프랑스 루이15세가 했다는 말이다.


재정만 놓고 보면 문재인정부도 아버지 카라마조프를 닮았다. 뒷감당 어쩌려고 이렇게 돈을 펑펑 쓰나 싶다. 나랏빚 증가 속도는 어지러울 지경이다. 심리적 마지노선이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40%는 일찌감치 무너졌다. 머잖아 50%를 넘본다. 고용보험 적립금도 푹 줄었다. 실업급여를 더 많이, 더 길게 주기 때문이다. 건강보험도 마찬가지다. 문재인케어 덕에 병원비 부담이 준 건 좋지만 건보 적립금이 펑크 날까 걱정이다.

안다. 한국은 복지 후진국이다. 재정을 동원해서라도 복지를 넓힐 필요가 있다. 더구나 코로나 사태까지 겹쳤다. 추가경정예산을 한 해 네번씩이나 짠 것도 그래서다. 그걸 탓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누울 자리 봐가며 발을 뻗으라 했다. 돈을 쓰는 한편 곳간을 채울 방도도 같이 생각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저 쓸 생각만 한다. 이러다 한데 나앉게 생겼다.

문 정부의 잘못을 딱 하나만 꼽으라면, 나는 산타크로스 증후군을 대겠다. 마치 산타 할아버지처럼 선물을 주기만 할 뿐 고통분담을 호소하지 않는다. 결과는 '아몰랑 정부'다. 다음 정부, 다다음 정부야 어떻게 되든 말든 일단 빚을 내서라도 광나는 일만 한다. 거기서 나온 게 복지는 공짜라는 그릇된 생각이다. '무상복지'는 마치 네모난 동그라미처럼 그 자체로 형용모순이다.

문 정부는 쉬운 길을 골랐다. 임금을 올려 소득이 늘면 소비가 늘고, 소비가 늘면 경제가 성장한다는 환상에 사로잡혔다. 시장은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다. 경제엔 공짜가 없다. 열매를 따려면 누군가는 땀을 흘려야 한다. 부두(Voodoo·주술) 경제학 같은 소득주도성장은 이제 껍데기만 남았다.

유력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는 더 화끈한 산타크로스다. 2차 재난지원금 논란이 한창일 때 그는 "30만원 지급을 100번 해도 서구 선진국 국가부채 비율에 도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돈이 모자라면 국채를 찍으라고 재촉한다. 기본소득·주택·대출 3종 세트는 장차 이재명표 대선 공약으로 봐도 무방하다. 정책의 잘잘못을 떠나 하나같이 큰돈이 드는 대형 프로젝트다. 돈은 누가 내나? 역시 정부 곳간부터 헐 공산이 크다.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는 1940년 하원 연설에서 "내가 드릴 것은 피와 노고, 눈물, 땀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5년 뒤 영국은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을 꺾었다. 국민에게 진실을 알리고 고통분담을 호소하는 용기야말로 참지도자의 덕목이다.

문 정부는 재정을 많이 망가뜨렸다. 누가 정권을 잡든 차기 정부는 물 새는 재정 댐을 수리해야 할 역사적 책무가 있다. 안 그러면 대홍수다. 아몰랑 정부 시즌2가 나온다면 최악의 시나리오다. 이 지사는 현재 대권후보 지지율 1위다. 사이다 발언으로 인기가 높다.
그가 에너지를 쏟는 기본 시리즈엔 돈이 많이 든다. 현실을 솔직히 알리고, 증세 등 고통분담을 설득해야 진짜 사이다 용기다.
만약 누군가 옆에서 쉬운 길이 있다고 이 지사를 꼬드긴다면 그 사람은 십중팔구 정치 야바위꾼이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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