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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동대문 두타

최진숙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9.22 18:44

수정 2020.09.22 18:44

작가 박완서의 소설 '그 남자네 집'은 1950년대 남루한 서울의 풍경을 세밀화처럼 그렸다. 소설 속 주요 공간 중 하나가 동대문시장이다. "시장은 범위도 넓지만 그 겹이 무궁무진했다. 우리는 올케가 장사하는 포목백화점 한 동만 빼놓고 모험을 다니듯 이 골목 저 골목을 두루 섭렵했다. 돌아다닐 때마다 그 재미가 새록새록했다."

실제 서울 청계 4가에서 6가 사이 동대문시장은 전후 가장 노른자위 상가였다.
화려한 색상의 온갖 화학섬유들이 진열된 포목점은 물론 신선한 청과물, 집안 대소사에 필요한 각종 물품 등 없는 게 없었다. 시대를 거슬러가보면 이 시장이 그 같은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은 1905년 광장주식회사 설립 때부터다. 일본 상인들에 맞서 조선상인들을 지키기 위해 만든 시장 관리 조직이었다. 이때 산파 역할을 한 이가 배오개 거상 박승직이다. 1896년 그가 차린 박승직상점이 지금 두산그룹의 출발이다.

1990년대 말 두산그룹은 을지로시대를 마감하고 동대문 두산타워로 자리를 옮겨 새출발을 선언한다. 중후장대 기업으로 사세를 확장하던 시기였다. 그러면서도 소비재를 놓지 않았다. 당시 동대문시장은 패션몰 주도로 유례없는 호황기를 구가했다. 지하 7층, 지상 34층짜리 두타는 랜드마크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지금 동대문 상권은 온라인쇼핑몰, 중국 관광객 급감, 초유의 코로나19가 겹쳐 예전 같지 않다.

㈜두산이 그룹의 상징 같은 건물 두타를 결국 매각했다. 그룹재무구조 개선 차원에서 자산운용사에 약 8000억원을 받고 팔았다. 두산은 유동성 부족을 겪는 두산중공업을 살리기 위해 산업은행 등으로부터 3조원이 넘는 지원을 받았다. 충실한 자구안 이행을 위해 경영진은 팔 수 있는 건 다 팔고 있다.
그룹 효자였던 두산중공업은 해외수주 급감에다 탈원전·탈석탄 정책의 유탄을 맞았다. 두산은 올해로 설립 124년이 된 국내 최장수 기업이다.
저력을 기대한다.

jins@fnnews.com 최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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