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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우리 軍 맞나

김학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9.24 18:05

수정 2020.09.24 18:05

[여의도에서] 우리 軍 맞나
남북 이슈를 놓고 볼 때마다 우리만 당했다는 기분이 들고 결국은 본전 생각이 나는 것은 왜일까.

비난받을 일은 북한이 먼저 해놓고 우리가 그에 상응하는 대응을 했다는 기억이 별로 없다. 강대강으로 가면 파국이란 우려가 우리 스스로를 자제시키고 있지만, 늘 당혹스러운 북한의 대응에 할 말을 잃곤 한다.

이번엔 북한 해상에서 북한군이 우리 국민을 총살하고, 그것도 모자라 시신을 불태웠다. 국방부 공식 확인 내용이다. 그런데 정권의 특성이 반영됐다고 해도, 북한의 몹쓸 짓에 대응하는 우리의 모습은 '고구마' 그 자체다.

문재인정부가 대북 유화정책을 쓴다고 해도 국방부의 신중한 반응은 납득하기 어렵다.
북한의 행태에 대해 '만행'이라고 일갈했던 국방부의 강경 모드는 브리핑을 거치면서 결국 희석됐다. 북측 해역에서 일어난 사건이란 전제로 어쩔 수 없었다는 군의 설명 논리는 국민의 정서를 두고두고 건드릴 것으로 보인다.

브리핑 말미에서 군 관계자는 이번 사건에 대해 "남북이 군사적으로 대치하거나 군사적 대응조치가 필요한 사안이 아니다"라며 "이건 분명히 북측 해역에서 일어난 사건이었고, 저희가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즉시 대응할 사안이 아니었다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강조했다.

9·19 남북군사합의 위반 여부에 대해서도 "넘어온 인원에 대해 '사격하라 마라'라는 (조항은) 없다"며 합의정신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9·19 군사합의에선 완충구역 내에서 제한하는 것은 '사격'이 아닌 '포격'임을 강조하는 미시적 규정까지 거론하며 애써 남북군사합의 위반 논란을 피하려 했다.

더욱이 우리 군은 연평도 공무원의 신변이 위협을 받는 상황에도 북에 유감 표명은 커녕 사실관계 확인만 요청했다고 한다. 당연히 북한에선 어떠한 답변도 없었다. 북한 해역으로 넘어간 해당 공무원이 북한군에게 발견된 이후 총격을 받기 전까지 우리 군의 조치는 없었다. 북한 해역에서 일어난 일이었고, 우리 군은 수색을 이어갔고, 정확한 정보를 확인할 수 없었다는 게 무대응의 명분이다. 다분히 이번 일은 군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뉘앙스만 짙게 깔렸다.

중요한 것은 영토, 영해, 영공을 떠나 우리 국민이 어디에 있든 구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군의 임무다.

실무자들 입장에서 할 말은 많겠지만 '일개 국민 한명쯤은 남북관계라는 대의 아래 내팽개쳐도 된다'는 인식은 군은 물론 문재인정부 관계자 어느 누구도 해선 안될 것이다.

사실 북한에 대한 답답한 대응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이번 일로 2010년 11월, 이명박정부 시절 일어난 북한의 연평도 무력도발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듯하다. 당시 국방부 장관은 국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북한의 연평도 포격에 "단호하지만 확전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다고 증언,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북한이 연평도에 포탄을 쏟아내던 상황에서 당시 청와대의 기조는 40분 사이 '확전되지 않도록 잘 관리하라'에서 '확전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라'로, 이후엔 '단호히 대응하되 상황이 악화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라'로 변했다고 전해진다.

결과적으로 '확전 자제'라는 소극적 대응만 부각되면서 우리 군의 철저한 맞대응은 대중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이번 국방부의 답답한 해명이 그 전철을 밟게 될까 걱정이다.

hjkim01@fnnews.com 김학재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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