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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추석방역

정인홍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9.27 18:09

수정 2020.09.27 18:09

세종 26년(1444년) 전염병이 전국을 휩쓸자 세종이 명을 내렸다. 방(榜)은 "백성들 중 질병을 얻은 자는 다른 사람과 섞여 살게 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요즘 코로나19 대응 매뉴얼인 K방역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닮았다. 앞서 1432년, 1434년에도 전염병이 돌았었다.

세종의 전염병 대응 매뉴얼은 꽤나 구체적이다. 긴급하지 않은 건축 공사는 중단시켰고, 각 도 관찰사에게 병자를 책임지고 치료할 것을 지시했다.
전국에 감찰단을 파견해 환자 관리실태를 두루 살폈고, 이를 소홀히 한 관리는 엄중 문책했다. 집단감염을 막기 위해 백성들을 활인서(빈민진료기관)와 진제장(무료급식소) 등에 분산시켰다. 지금의 선별진료소만 없을 뿐이지 글로벌 표준인 K방역시스템과 견줘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또 병세가 심하지 않은 환자라도 일을 시켜 다시 병이 도지지 않도록 명했다. 이상 증세가 있으면 출퇴근하지 말고 집에서 쉴 것을 권고한 지금과 비슷하다. 세종은 전국에 처방문까지 친히 내려 매일 이른 아침 세수하라고 했다. 손씻기 등 코로나19 예방수칙을 담은 긴급 재난문자와 판박이다.

다산 정약용은 "전염은 콧구멍으로 병 기운을 들이마셨기 때문에 생긴다"고 했다. 그러면서 환자와 일정 거리를 두고 문병 시 바람을 등져야 한다고도 했다. 이 역시 공기 중 비말 전파를 막기 위해 거리두기를 강조한 지금과 많이 닮았다. 조선시대 전국을 휩쓴 전염병은 무려 1400여건에 달한다. 숙종 재위 동안(1674~1720년)에만 141만명 이상이 전염병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정부는 28일부터 내달 11일까지 2주를 추석특별방역기간으로 정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코로나19 재확산을 우려하면서 가급적 모이거나 이동하지 말고 비대면 방식으로 안부와 정을 나눠달라고 당부했다.
차례를 지내는 것도, 고향을 찾는 것도, 가족끼리 모이는 것조차 쉽지 않게 생겼다. 말 그대로 우울한 추석이 될 것 같다.
차례상에 올리는 지방(紙榜)에도 마스크를 씌워야 할 판이다. haeneni@fnnews.com 정인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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