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과학

공포의 바이러스, 착한 바이러스도 있다

김만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10.06 13:33

수정 2020.10.06 13:33

진균바이러스, 유채에 치명적인 곰팡이를 유익한 곰팡로 변신
코로나19 바이러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제공
코로나19 바이러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제공
[파이낸셜뉴스] 단백질과 핵산으로 이뤄진 생물이자 무생물이기도 한 존재,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100% 숙주에 의존한다. 바로 바이러스다. 육안으로 보이지도 않는 이 바이러스 앞에서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맥을 못추고 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옛 말이 무색하다. 흩어져야 살고 뭉치면 감염된다.

2019년 12월 코로나19에 첫 감염자가 확인된 이후 지금까지 전세계에서 3500만명이 감염됐으며 100만명 이상이 사망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사회,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가 페닉상태를 겪었고 아직도 진행중이다. 감염되지 않은 사람들조차 불안과 공포, 장기간의 긴장으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바이러스가 꼭 나쁜 것만 있을까, 혹시 착한 바이러스는 없을까. 혹자는 인류를 외계인의 침공에서 지켜줄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바이러스라고 말한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류충민 감염병연구센터장은 6일 "일부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바이러스 자체는 착하고 나쁜 것은 없다, 상대적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유채꽃. 게티이미지 제공
유채꽃. 게티이미지 제공
■곰팡이 성질을 바꾼 바이러스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한 착한 바이러스가 최근 과학자에 의해 발견됐다.

중국의 화중농업대학교 다홍 장 교수는 9월 30일 진균바이러스가 유채에 치명적인 곰팡이를 유익한 곰팡이로 바꿔준다는 연구결과를 국제 학술지 '분자 식물학'에 발표했다.

유채나 콩이 균핵병균이라는 곰팡이에 감염되면 뿌리가 썩어 며칠 내 죽는다. 이 곰팡이는 줄기에 솜뭉치처럼 달라붙어 조직을 녹이면서 영양분을 빨아 먹는다.

연구진에 따르면 균핵병균이 버섯파리가 옮기는 바이러스 'SsHADV-1'을 만나면 성질이 완전히 변한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이 곰팡이는 유채에 들어가도 아무런 해를 주지 않았다. 오히려 유채 면역 체계를 강화시켜 무게를 18%나 늘렸다. 유채밭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된 곰팡이가 있는 곳은 종자 생산량도 14.9%까지 증가했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17세기 네덜란드 튤립 파동에 주인공 '셈페르 아우구스트' 튤립. 바이러스에 감염돼 여러 색을 띄고 있다.
17세기 네덜란드 튤립 파동에 주인공 '셈페르 아우구스트' 튤립. 바이러스에 감염돼 여러 색을 띄고 있다.
■튤립 파동 주인공은 바이러스
17세기 네덜란드 경제를 집어 삼켜 경제 대국의 지위를 잃게 만든 튤립 파동의 중심에도 바이러스가 있었다. 터키가 원산지였던 튤립이 네덜란드로 건너가면서 벌어진 사건이다.

한 화훼업자가 튤립 한송이에 여러 색이 나오는 특별한 종을 발견했다. 이 튤립의 뿌리알은 한 알에 집한채 값 정도로 팔렸다. 당시에는 그 원인이 바이러스라는 것을 몰랐고 이 튤립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300년이 더 지난 1928년, 도로시 케이레이에 의해 튤립 줄무늬 바이러스가 변종 튤립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결론은 튤립가격 폭락으로 이어졌지만 어쨌든 이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소득을 안겨준 것만은 사실이다.


천연두 바이러스. 게티이미지 제공
천연두 바이러스. 게티이미지 제공
■바이러스로 바이러스를 극복
바이러스가 경제적 도움 이외에도 인간에게 직접적으로 이로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백신이다. 백신은 바이러스나 바이러스를 죽여 일부 조각을 인간 몸 속에 넣어 항체를 만든다.

인류를 구한 세계 최초의 백신은 천연두다. 18세기말 영국의 의사이자 과학자였던 에드워드 제너가 천연두 백신을 발견할 때까지 수많은 인간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천연두가 전 세계에 퍼졌음에도 이상하게 소 젖을 짜는 여자들은 천연두에 안걸렸다. 에드워드 제너가 유심히 살펴본 결과 소가 걸리는 천연두 비슷한 우두가 사람에게 감염돼 손에 물집이 자주 잡히곤 했다. 우두에 감염된 여인은 진짜 천연두에 걸렸을때 잠깐 앓고 넘어갔다. 즉 우두가 백신이 돼 진짜 천연두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왔을 때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

이때 발견한 백신으로 지금까지 지구상에 완전히 사라진 전염병은 천연두 밖에 없다고 한다. 오늘날 백신이라는 단어도 라틴어로 소를 뜻하는 '바카(vacca)'에서 가지고 왔다.


영국의 퀸메리 대학의 존 마셜 교수팀이 구제역 바이러스의 단백질에서 뽑아낸 펩타이드가 췌장암 세포를 집중적으로 찾아간다는 사실을 여러 실험을 통해 발견했다.
영국의 퀸메리 대학의 존 마셜 교수팀이 구제역 바이러스의 단백질에서 뽑아낸 펩타이드가 췌장암 세포를 집중적으로 찾아간다는 사실을 여러 실험을 통해 발견했다.
■바이러스로 암을 치료한다
세계 과학자들이 바이러스의 성질을 이용해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상당수가 바이러스를 약물 전달체로 이용해 암 치료를 목표로 한다.

지난 2월 영국의 퀸메리 대학의 존 마셜 교수팀은 구제역 바이러스를 이용해 췌장암을 치료하는 연구 논문을 국제학술지 '쎄라노스틱스'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구제역 바이러스의 단백질에서 뽑아낸 펩타이드가 췌장암 세포를 집중적으로 찾아간다는 사실을 여러 실험을 통해 발견했다. 이 펩타이드는 주로 최장암 세포에 있는 특이한 단백질만 찾아가 결합하는 성질이 있다.

연구진은 이 펩타이드에 함암제를 담아 췌장암에 걸린 실험쥐에 주입했다. 그 결과 특이한 단백질이 퍼져있는 췌장의 암세포가 파괴되는 것을 확인했다. 실험쥐를 통한 테스트에서 펩타이드를 주 3회 투여하자 암세포 성장이 멈추는 것을 확인했다. 또 항암제의 용량을 늘려 주 2회 투여하자 암세포가 사멸됐다.

이외에도 식물 바이러스인 담배 모자익 바이러스를 사용해 인체에 단백질을 옮기거나 약물을 전달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2005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만든 영화 '우주전쟁'. 19세기 초 허버트 조지 웰스라는 영국 작가가 쓴 SF소설이 원작이다.
2005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만든 영화 '우주전쟁'. 19세기 초 허버트 조지 웰스라는 영국 작가가 쓴 SF소설이 원작이다.
■인류를 지키는 최후의 무기?
만일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한다면 인간은 외계인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을까?
류충민 센터장은 "외계인이 한번도 노출되지 않은 바이러스에 당할 수 있다는 상상은 현실적으로 가능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바이러스가 인류를 구해 줄 것이라고 상상을 담아낸 소설이 있다. 19세기 초 허버트 조지 웰스라는 영국 작가가 쓴 SF소설 '우주전쟁'. 이 소설은 2005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영화로 만들기도 했다.

외계인은 인간이 상상도 하지 못했던 무기로 지구를 휩쓸어 버린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지만 다 실패, 모든게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갑자기 외계인들이 죽기 시작한다. 소설에는 그 원인이 세균이라고 쓰여 있다.

그 비슷한 경우가 바로 잉카제국. 스페인이 잉카제국을 멸망시켰던 것은 총, 칼도 대포도 아닌 천연두 바이러스였다. 북미의 인디안도 마찬가지.

천연두가 전세계에 퍼졌을때 죽을 사람은 다 죽고 살아남은 이들만 항체를 가지고 살아왔다가 처음으로 아메리카에 접촉한 것이다.
아메리카 대륙은 콜럼버스가 발견하기까지 유럽이나 아시아와 한번도 접촉 한 적이 없었다. monarch@fnnews.com 김만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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