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차관칼럼

[차관칼럼] 공정거래법 개정, 시장경제 새 길 연다

오은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10.11 18:02

수정 2020.10.11 18:02

[차관칼럼] 공정거래법 개정, 시장경제 새 길 연다
우리 경제는 시장경제 체제다. 그러나 우리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상당한 굴곡과 부침이 있다. 1960~1970년대는 정부 주도의 성장 우선정책이 추진되면서 정부가 한정된 자원을 기업에 배분하고 강력한 보호·지원·육성 시책이 추진됐다.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냈지만, 담합과 같은 여러 불공정행위들이 잉태되고 관행화됐던 시기다. 1981년 공정거래법이 제정, 시행됐다. 십수년간 번번이 좌절됐던 법이 아이러니하게 군사정권 리더십하에서 빛을 보게 된 것이다.
1987년에는 헌법에 경제민주화 규정이 신설됨으로써 경제민주화가 헌법 정신으로 천명됐다. 우리 시장경제 체제가 보다 성숙하고 균형 잡힌 경제로 도약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된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한국 경제의 방향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한 중대한 전환점이었다고 생각한다.

정부는 1981년 제정 이래 부분적으로 보완돼 왔던 공정거래법 전면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2017년 겨울부터 민관합동 특별위원회를 통해 각계 전문가의 중지를 모으고 토론회, 간담회 등을 통해 이해관계자 등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이렇게 마련된 전면개정안은 20대 국회에서 일부 절차개선 내용만 국회를 통과한 뒤 자동 폐기됐고, 지난 8월 동일한 내용을 담은 법안이 다시 21대 국회에 제출돼 본격적인 심의를 앞두고 있다.

이번 개정안에 대해 기업의 부담을 우려하는 목소리와 함께 오히려 개혁성이 부족해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정반대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기업으로서는 공정거래법 개편 자체가 부담스럽고 불편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은 우리 시장경제 질서를 확립하고, 기업의 투명성·책임성을 높여 중장기적으로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지속가능한 시장경제 체제를 만들어가는 내용들이다.

몇 가지 개정 내용을 간략히 소개해 본다. 첫째, 소위 일감몰아주기 적용대상이 되는 기업 범위를 확대했다. 자산규모 5조원 이상 64개 기업집단(총 2284개 계열사) 내에서 계열사끼리 연간 약 200조원의 내부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공정거래법은 내부거래 자체를 문제 삼지 않고, 총수일가의 사익추구를 위해 계열사를 이용하는 극히 일부의 '비합리적·비정상적' 거래만 금지하고 있다. 다만 총수일가 지분율을 낮춰 법 적용대상에서 빠져나가거나 자회사를 통한 일감몰아주기를 감시할 필요성이 있어서 적용대상을 확대한다는 것이다.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적용대상 기업이 현행 210개 회사에서 598개 회사로 늘어난다.

둘째, 공정위 일변도로 운영되던 법 집행에 민사·형사적 요소를 보강했다. 불공정거래로 피해를 볼 위험에 처한 중소기업 등이 직접 법원에 해당 행위 중지·금지를 청구할 수 있도록 새로운 길을 열어놨다. 또한 공정위는 그간 소극적인 고발로 인해 상당한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따라 가격·입찰담합 등 경성담합에 한해 전속고발제를 폐지하기로 했다.

끝으로, 이번 개정안이 규범 강화에만 초점을 맞춘 것도 아니다. 외국사례 등을 참고해 형사 집행 필요성이 적은 기업결합이나 일부 불공정행위 등에 대해서는 형벌규정을 삭제했다. 기업의 혁신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벤처지주회사 설립·운영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소비자에게 이익이 되는 재판매가격유지행위도 허용했다.
한편 이번 개정안에는 들어 있지 않지만 지주회사의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제한적 보유 허용방안도 별도로 추진할 방침이다.

10년, 20년 후에 2020년 겨울을 돌아보면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부디 이번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공정경제와 지속 가능한 경제발전의 든든한 토양이 될 수 있도록 심도 있는 국회 논의 과정을 거쳐 올해는 꼭 통과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재신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