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논의 사라진 광화문 광장… '차벽유감'

이병훈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10.12 18:02

수정 2020.10.12 18:02

[기자수첩] 논의 사라진 광화문 광장… '차벽유감'
최근 2주간 광화문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는 '경찰의 차벽 설치'였다. 이것은 적절했을까, 그렇지 않았을까.

결론은 없다. 가치관에 따라 과잉대응이라 여길 수도,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어느 한쪽의 주장이 그저 억지라고 치부하기엔 나름의 논리와 설득력이 있다.

광장은 토론의 장이다. 광화문광장은 한국의 대표 광장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4년 전 민주주의에 대한 뜨거운 논의를 했고, 이제는 그 시대를 살고 있다. 지난해 연말부터 올해 초까지는 그 논의 결과 탄생한 세력의 잘못을 지적하는 집회도 열렸다. 광장에서는 항상 뜨거운 논의가 있어 왔다.

하지만 사람 대신 채워진 차벽을 두고 토론은 없었다. 세력은 찬반으로 나뉘어 각자 주장만 되풀이했다. 국정감사에서는 이런 행태가 정점으로 치달았다. 각 정당은 입장을 정하고, 내용은 같지만 표현만 다른 이야기를 반복했다.

정쟁에 휘말리니 시민들 간에 토론이 될 리가 만무하다. 그들도 각자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 주는 유튜브와 팟캐스트에만 귀를 기울였다. 고민 없는 일방적 주장은 잘못된 확신, '확증 편향'을 가져다줬다. '팩트풀니스'의 저자 한스 로슬링은 확증편향을 '세상의 모습을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믿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광장에서 촉발된 논란이라고 생각하기에도 민망한 태도다. 치열한 토론을 위해 만들어진 광장이, 서로의 주장을 위한 도구로만 쓰이고 있다.

광장을 인파로 채워야만 논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해 헌법상 보장된 자유를 다시 돌아보게 됐고, 그것이 제한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광화문에 채워진 차벽은 그런 상징으로 기능할 수도 있었다.

보수단체들은 주말마다 광화문에서 집회를 열겠다고 공언했다. 비슷한 논란은 반복될 것이다.
이전까지의 언쟁과 그 후는 달라야 한다. 이것은 광장의 역할을 복원시키는 일과도 연결된다.


한스 로슬링은 확증편향을 이겨내기 위해 '데이터에 기초한 사실을 택할 수 있는 냉정한 태도'를 요구했다. 나와 반대되는 이야기도 들어보려 하고, 그 사이에서 합리적 대답을 찾아내는 것. 광장이란 이름에 걸맞은 숙의 과정에서 꼭 필요한 행동 아닐까.

bhoon@fnnews.com 이병훈 사회부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