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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어중간한 결론에 그친 감사원 원전 보고서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10.20 18:28

수정 2020.10.23 17:38

경제성 평가 잘못됐지만
폐쇄 타당성 판단은 유보
감사원 전경./뉴스1
감사원 전경./뉴스1
감사원이 20일 경북 경주의 월성원전 1호기 조기폐쇄 결정에 대해 다소 어중간한 결론을 내렸다. 경제성 평가는 잘못됐지만, 조기폐쇄 자체가 타당한지 여부를 판단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감사원은 한편으론 야당인 국민의힘, 다른 한편으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 유리한 판단을 내렸다. 결국 여야가 비긴 셈이다.

월성 1호기는 비운의 원전이다. 1983년 가동을 시작했다.
30년 설계수명이 다가오자 한수원은 2009년 원자력안전위원회에 10년 연장 운영을 신청했으나 6년 만인 2015년에야 비로소 승인이 떨어졌다. 한수원은 그새 개·보수 비용 7000억원을 들였다. 하지만 운영을 재개한 지 3년 만에 다시 조기폐쇄 운명을 맞았다. 월성 1호기는 문재인정부가 국정과제로 추진한 탈원전 정책의 희생양이 됐다.

상식적으로 봐도 월성 1호기 경제성에 대한 판단은 엉터리다. 한수원은 2018년 6월 이사회를 열고 조기폐쇄를 의결했다. 경제성이 떨어져 즉각 가동을 중단하는 것이 낫다고 했다. 하지만 그에 앞서 한수원은 자체 평가에서 월성 1호기가 수천억원대 경제성을 갖는다고 분석했다. 스스로 잰 플러스 수치를 마이너스로 뒤집은 꼴이다. 감사원은 이 같은 계산이 엉터리였음을 공인했다.

하지만 감사원은 조기폐쇄가 정당한지 여부에 대한 판단은 유보했다. 당초 국회는 '월성 1호기 조기폐쇄 결정의 타당성'에 대한 감사를 요구했다. 감사원 보고서는 알맹이가 빠진 셈이다. 사실 원전 폐쇄는 경제성보다 안전이 더 중요한 요소다. 주민 수용성도 변수다. 이번에 감사원은 경제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조차 버거워했다. 당정은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는 탈원전 정책 보호에 적극 나섰다.

불똥은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산업부 국장, 정재훈 한수원 사장에게 튀었다. 2년 전 조기폐쇄를 부적절하게 유도하고, 자료 삭제 등으로 감사원 감사를 방해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검찰 고발은 없고 인사자료 통보, 주의, 징계요구 수준이다. 한수원 이사들은 면죄부를 받았다. 감사원은 조기폐쇄 의결을 업무상 배임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분명한 것은 감사원 감사가 무리한 탈원전 정책에 경종을 울렸다는 점이다.
앞으로 수명이 다한 원전을 조기폐쇄할 때마다 같은 논란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감사원은 이번 기회에 합리적인 경제성 평가기준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정부·여당이 이 권고만이라도 실천에 옮기길 바란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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