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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한국경제의 거목 이건희 별세를 애도한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10.25 18:01

수정 2020.10.25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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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 선언을 하던 당시 모습. /뉴시스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 선언을 하던 당시 모습. /뉴시스
한국 재계의 큰 별 이건희 삼성 회장이 25일 타계했다. 향년 78세. 고인은 삼성의 무대를 세계로 확장시켜 글로벌 초일류 자리에 올려놓은 주역이다. 1987년 그룹회장에 취임한 뒤 2014년 자택에서 쓰러질 때까지 27년간 삼성을 이끌며 세계 곳곳에 한국의 이름을 알렸다.

이 회장의 탁월한 경영은 확신에 찬 도전과 열정, 끝없는 혁신의지에서 나왔다. 1993년 삼성전자 임원들을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불러모아 작심하고 내놓은 신경영 선언은 한국 기업사에서도 획기적인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고 한 그의 주문은 변화와 혁신을 향한 삼성의 결기를 보여준 역사적인 발언이었다.


초일류를 향한 이건희식 스타일은 거침이 없었다. 반도체를 과감히 삼성의 먹거리로 삼은 이가 그였다. 세계 시장을 석권한 TV, 애니콜 신화 등 혁신의 고비마다 그의 투지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1995년 불량 무선전화기 15만대를 사업장에서 불태운 일화는 품질 제일 삼성의 이미지를 전 세계에 각인시킨 사건으로 남았다.

그는 양보다 질에 승부를 걸었다. "걷기 싫으면 놀아라. 그러나 남의 발목은 잡지말라" "21세기는 탁월한 한 명의 천재가 10만∼20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어록에서 이 회장의 결기를 느낄 수 있다. "정치는 4류, 정부는 3류, 기업은 2류"라는 솔직한 평가는 제 발 저린 정치권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항상 성공만 있었던 건 아니다. 젊은 시절 꿈이었던 자동차 사업의 실패는 아픈 기억이다. 김용철 변호사 폭로로 시작된 비자금 사건 등으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순간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27년이 삼성의 눈부신 성장의 시간이었다는 건 변함이 없다. 그룹 시가총액은 1987년 9000억원에서 2014년 318조원으로 348배나 늘었다.
이 회장이 만든 토대 위에 삼성의 브랜드 가치는 글로벌 5위까지 올랐다. 그의 삶은 기적의 한국경제와 궤를 같이한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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