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네이버포비아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11.02 18:12

수정 2020.11.02 18:12

관련종목▶

은행·증권사등 바싹 긴장
금융은 규제 그물이 촘촘
타다 좌절 반면교사 삼길
[곽인찬 칼럼] 네이버포비아
2004년에 첫 포스팅을 했으니 네이버 블로그를 쓴 지 올해로 16년째다. 제법 긴 세월이다. 주로 산행기를 올린다. 얼마 전 경기도 동두천에 있는 소요산 단풍 산행기를 올렸더니 찾는 이들이 꽤 있다. 조회수가 오르면 기분이 좋다. 나는 네이버 덕에 대중과 만날 수 있고, 네이버는 나 같은 블로거 덕에 더 많은 사람을 끌어모은다.
네이버와 나는 동반자 관계다.

얼마 전 금융당국 사람을 만났더니 대뜸 요즘 금융권 사람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고 전한다. 공포 유발자는 네이버다. 이러다 자산운용, 보험, 증권, 은행이 네이버 입점업체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미 네이버는 금융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 자회사 네이버파이낸셜 사이트 첫 화면에는 "이제 결제서비스(네이버페이)를 넘어 금융플랫폼으로의 변화를 시작한다"고 공언하고 있다. 금융을 넘보는 건 카카오도 마찬가지 아닌가 물었더니 다르다고 했다. 카카오는 제도권 안으로 들어왔지만, 네이버는 밖에서 시장을 휘젓고 있다는 얘기다.

금융당국의 고민은 바로 여기에 있다. 금융혁신은 가야 할 길이다. 한번 플랫폼의 편리함에 맛들인 소비자는 옛날로 돌아가지 못한다. 소비자 후생 측면에서도 네이버가 이끌 금융혁신은 쌍수를 들어 환영할 만하다.

그런데 걱정이 있다. 금융이 가진 특성 때문이다. 휴대폰과 사모펀드를 비교해보자. 휴대폰을 살 때 우리는 값을 치르는 순간 손에 잡히는 신상 휴대폰을 받는다. 그러나 사모펀드를 살 때는 아무것도 받는 게 없다. 그저 펀드를 파는 은행, 증권사를 믿고 몇 억원을 맡긴다.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난주 국감에서 증권사 권유로 옵티머스자산운용이 굴리는 펀드에 자신을 포함해 가족이 총 5억원을 투자했다고 말했다. 이 돈이 자칫하면 공중으로 날아가게 생겼다.

금융은 신뢰가 생명이다. 신뢰가 깨진 금융은 존재 이유가 없다. 개인만 망가지는 게 아니라 종종 나라 경제까지 흔들린다. 그래서 어느 나라든 금융은 규제 그물로 촘촘히 묶는다. 금융에 면허(라이선스) 진입장벽을 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네이버에 당부한다. 타다와 배달의민족을 반면교사로 삼기 바란다. 모빌리티 혁신을 이끌던 타다가 사업을 접은 것은 지금 생각해도 아쉽다. 그렇다고 타다가 다 잘했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나이 지긋한 택시기사들을 너무 거칠게 몰아붙였다. 배민은 올해 수수료 체계를 바꾸려다 포기했다. 소통 부족으로 시장의 반발이 컸기 때문이다. 덩달아 정치권도 들썩였다. 이후 배민은 전략을 바꿔 겸손 모드로 돌아섰다. 얼마 전엔 배달기사 노조와 단체협약을 맺기도 했다.

바깥 분위기도 네이버에 호의적이지 않다. 지난달 미국 법무부는 세계 최강 플랫폼인 구글을 상대로 반독점소송을 걸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립자인 빌 게이츠는 CNBC와 인터뷰에서 MS가 성장할 때 "몇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고 말했다. "그중 하나는 (행정부와 의회가 있는) 워싱턴DC에 가지 않은 것"이다. MS는 1990년대 말 반독점 소송에 휘말려 곤욕을 치렀다. 국내에도 호랑이의 눈으로 네이버를 지켜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네이버가 좀 더 겸손해지길 바란다. 누가 뭐라 해도 네이버는 국내 최강 플랫폼이다.
사람이든 기업이든 커질수록 책임이 따른다. 벼 이삭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했다.
나와 네이버 블로그의 관계처럼, 네이버가 기존 금융과 공생하는 법을 터득하기 바란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