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fn광장

[fn광장] '더 느리게 살기'를 강요하는 나라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11.04 18:00

수정 2020.11.04 17:59

[fn광장] '더 느리게 살기'를 강요하는 나라
빨리빨리 대한민국이 이제는 느림보 나라로 변신하고 있다. 국가경제의 규모가 커지고 노인인구 비율이 높아지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느려질 수밖에 없지만, 정부가 각종 규제와 정책으로 더 느리게 만드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현 정부 출범 이후 멀쩡하게 돌아가는 수레바퀴를 멈추려는 규제와 정책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아파트 등 부동산은 사람들의 중요재산이기도 하지만 의식주의 근거가 되는 것이어서 가격이 안정돼야 한다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부동산 가격 폭등을 막기 위해서 정부가 나서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부동산 관련 대출을 규제하고 양도소득세를 올리고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를 인상하는 것과 같은 강압적 수단으로 수요를 억제하려는 정책은 부동산 시장을 더욱 혼란 상태로 빠지게 하고 있다.


전월세도 그렇다. 임차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사회적 논의도 충분히 하지 않고 날치기로 통과시킨 부동산 임대차 3개 법안은 결과적으로 전세매물을 잠그고, 전세가격을 폭등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정부가 우리나라에서만 성행하는 전세는 월세로 전환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방관하다가 이제는 월세마저도 매물이 부족하고 가격도 뛰고 있다. 공급부족 현상이 뚜렷한데도 정부가 시장을 하도 잡아 신규 분양시장까지 얼어붙고 있어 해결 기미를 찾기 어려운 국면에 들어가고 있다.

정부는 공급을 늘리는 과정에서 부자가 더 부자가 될까 무서워서 규제폭탄을 쏟아부은 결과가 현재의 불안정한 시장 상황이다. 거래하는 것도 막고, 보유하는 것도 막는 부동산 정책으로 부동산 시장이 언젠간 안정될 것으로 믿는 사람은 정책당국자와 그 주변 사람뿐일 것이다.

정부·여당이 추진 중인 공정경제 3개 법도 마찬가지다. 소액주주를 보호하고 재벌의 횡포를 막겠다는 취지로 추진 중인 다중대표소송제나 대주주 의결권 3% 제한 등은 자본주의 발전의 토양이 됐던 주식회사 제도의 근간을 망가뜨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소액주주의 이익은 보호돼야 하지만 대주주의 의결권 제한은 기업가가 진취적으로 경영할 수 없게 만들어 종국에는 글로벌 시대에 뒤처지는 나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초과근무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입법이나, 현실을 무시한 최저임금의 단기간 무리한 인상이 정부가 원래 보호하려 했던 근로자의 일자리를 오히려 줄이는 결과를 초래해 엄청난 갈등과 혼돈을 겪은 기억을 벌써 까맣게 잊은 듯하다.

경제와 사회는 유수와 같이 잘 돌고 돌아야 나라가 발전하고 국민은 평안해진다. 인류는 정치적으로 자유를 신장시키고, 경제적으로 시장경제를 통해 현재와 같이 다수의 사람이 풍요롭게 살 수 있는 번영의 시대를 열었다. 자유와 시장경제 운행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불평등과 시장실패를 조정하기 위해서 정부의 개입이 필요할 수 있지만, 그것은 최소한 수준에 머물러야 한다.
역사상 자유로운 거래와 이동을 막는 정책으로 국민이 더 풍족해지고 국가가 더 부강해졌다는 기록은 거의 찾기 어렵다. 느리게 사는 것은 미학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멋있게 보인다.
그러나 생존경쟁 현장에서 정부가 개인과 기업의 경제활동을 발목 잡고 수갑 채우는 각종 규제와 정책은 대한민국을 정체와 후퇴의 늪으로 몰아갈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