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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관칼럼] 기술사업화, 스무고개를 넘는 방법

서영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11.15 18:02

수정 2020.11.15 18:02

[차관칼럼] 기술사업화, 스무고개를 넘는 방법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그리고 사용해봤을 법한 W사의 유명 배달 애플리케이션은 114와 같은 전화번호 안내서비스였다. 하지만 방대한 전화번호를 모으기 힘든 데다 시장성이 없어 실패했다. 이 서비스가 배달앱으로 탈바꿈해 지난해 5654억원의 매출을 달성하고, 연 8조6000억원의 거래가 이뤄지는 거대한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이를 한단계 깊게 살펴보면, 전화번호 안내서비스가 배달앱이 되기까지 각 요소기술이 사업화의 고개를 넘는 발판으로 작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배달앱을 통한 음식 주문을 위해 디지털 결제 시스템을 탑재하고, 주문한 메뉴를 음식점에 알리는 주문정보 연동, 배달원과 음식점의 중개 역할을 수행하는 안내서비스 등을 동시다발적으로 가능케 하는 개별 기술이 투입된 것이다. 즉 기술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선해 사업화의 고개를 넘게 해주는 필수적인 요소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수출이 급증한 국내산 진단키트도 기술 활용의 결과다. 특히 감염병 발생 초기에 진단키트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긴급사용승인을 받은 5개 기업 중 4개 기업이 정부 연구개발(R&D)을 수행하며 진단기술력을 쌓아왔다. 그리고 시장 상황에 맞는 발빠른 사업화로 세계 각국이 주목하는 제품을 개발하고 신시장을 창출할 수 있었다.

이런 성과들을 많이 창출하기 위해 정부는 시장이 필요로 하는 개별 기술을 공공부문이 적기에 제공해주는 기술공급 파이프라인(pipe-line) 구축에 힘써왔다. 이 파이프라인을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있다면 시장에서는 고객수요 반영, 시장성 향상 등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

그러나 현재 기술공급 파이프라인은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고 있다. 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의 올해 조사에 따르면 공공기술이전 및 사업화의 저해요인 1순위(23.1%)는 기술의 사업성 부족이었다. 쉽게 말해 정부 R&D 결과로 만들어진 공공기술은 시장 요구 수준에 도달하지 못해 활용이 곤란하다는 것이다. 이는 오랜 기간 공공기술의 시장진출 장애요인으로 꼽혔다.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는 기술사업화의 스무고개를 넘게 해주는 기초 원천 연구성과 확산체계 고도화 전략을 마련했다.

기초 원천 연구성과 확산체계 고도화 전략에서는 시장의 수요가 무엇인지 우선적으로 파악하고 활용하기 적합한 형태로 기술을 변화·발전시키는 기술숙성 과정이 핵심이다. 우선 기술이 목표로 하는 시장을 설정하고 기술의 활용 가능 범위, 후속 연구개발을 통한 기술력 향상 여부, 시장이 요구하는 시험 인증 취득 여부 등을 복합적으로 검토한다. 이 과정에서 도출된 지원 필요요소를 한데 묶어 R&D 묶음 형태로 통합지원해 사업화 장벽을 극복하게 하는 방식이다.

묶음형 R&D와 함께 사업화를 위한 정책자금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
기술숙성을 통해 고도화된 기술을 실제로 구현하기까지는 많은 자금이 소요되기 때문에 시장진출 가능성이 높은 사업화 모델에 초기 죽음의 계곡(Death-valley)을 극복할 수 있는 실탄을 지원하는 것이다. 이 같은 금융지원을 통해 기술공급 파이프라인은 더욱 굳건하고 튼튼하게 뻗어나갈 수 있다.


공공기술이 생명력을 얻고 민간시장에서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로 꽃을 피울 때 바야흐로 사업화의 스무고개를 넘어 연쇄적으로 도전적인 성과를 창출하는 혁신기술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정병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1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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