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조주빈 40년형, 성범죄 엄벌 이제 시작이다

구자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11.30 18:00

수정 2020.11.30 18:00

[기자수첩] 조주빈 40년형, 성범죄 엄벌 이제 시작이다
텔레그램 '박사방'을 운영하면서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유포한 조주빈이 1심에서 징역 40년을 선고받았다. 살인범에게도 이만큼의 중형이 선고되는 사례는 많지 않은 만큼 상당히 상징적인 판결이다. 특히 박사방 등 n번방 사건에서 범죄단체조직죄가 적용된 첫 사례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벌써 조주빈의 공범 중 한 명은 바로 다음 날 재판부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이로써 이번 사건에 대한 판단은 2심에서 다투게 될 것으로 보인다.
재판이란 게 최종 형량이 정해지기 전까지는 끝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또 n번방과 관련된 재판들은 지금도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게다가 이번 판결 하나만으로 사법부가 바뀌고 있다고 보는 것도 너무 섣부른 판단이다. 조주빈 1심 선고가 있은 바로 다음 날 서울중앙지법의 한 재판부에서는 호감을 갖고 있던 여성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해 강간한 남성에게 징역 2년6월을 선고했다. 가해 남성은 피해 여성에게 연락하지 말라는 수사 담당자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 피해여성에게 접촉을 시도했다. 이로 인해 피해 여성의 공황장애가 악화됐음에도 가해 남성에게 내려진 형량은 고작 2년반이었다. 해당 내용을 다룬 기사 댓글에는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이처럼 사법부와 국민의 법감정에는 여전히 괴리가 존재한다.

물론 그나마 실형이 나온 경우는 다행일지도 모른다. 강제추행, 불법촬영 등의 범죄를 저지르고 단순 벌금형 혹은 집행유예에 그치는 사례가 다수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이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귀가하는 모습을 보면 섬뜩하기도 한데, 여성들은 얼마나 불안할까 싶은 생각이 든다. '가해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라는 문구가 현실화되는 사회가 되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피해 지원에 관련된 문제들도 여전히 미흡하기만 하다. 특히 디지털성범죄의 경우 피해자의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피해는 말할 수 없을 정도다.
피해자가 이름이나 주민등록번호를 바꾸는 수준에 그칠 게 아니라 신상유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정책과 제도가 전방위적 대응을 해야 한다.

solidkjy@fnnews.com 구자윤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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