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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시평] 규제의 이중성과 솔직해지기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12.07 18:00

수정 2020.12.07 18:00

[fn시평] 규제의 이중성과 솔직해지기
코로나19에 정신을 빼앗긴 사이에 연말이 되었다. 확진자 수를 제외하면, 금년을 지배한 이슈는 성 범죄와 검찰개혁 그리고 주택문제였다. 이들은 하나의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규제의 이중성이다.

우리나라는 말 그대로 규제천국이다. 금년 국가보안법 문제로 거점을 옮기려는 홍콩 금융회사들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성과가 거의 없다고 한다.
과다한 정부규제 때문이다. 금융, 조세, 환경, 공정거래 등 경제·사회분야에서 우리나라 정부규제는 명실상부 세계최고 수준이다. 그런데도 현실에서는 위법행위가 횡행해서 성실한 대다수 기업과 시민들을 욕보이곤 한다. 규제의 이중성 때문이다.

사회적 물의가 생길 때마다 우리는 문제의 소지를 발본색원해서 일망타진하자고 목소리를 높인다. 실력에 넘치게 규제기준을 높이고 범위를 확대한다. 1% 문제에도 불구하고 99%는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명분에 밀려 그런 가능성은 종종 무시된다. 서민과 젊은이들의 근로의욕을 꺾는 주택문제도 비슷하다. 시장의 수요공급원리를 고려하는 대안보다 세금을 인상해서 아파트 가격을 억누르려는 강압적 시도가 줄곧 이어진다. 규제마다 거의 예외 없이 형사처벌을 들이대는 것도 세계적으로 드문 특징이다. 형벌 과잉현상을 문제로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많지만, 정작 형사처벌 법규를 정비하자고 하면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받기 십상이다. 21세기 문명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 정작 범죄자들이 제대로 처벌을 받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뇌물이나 금융범죄 같은 이른바 화이트칼라 범죄(white-collar crime)에는 배고픈 빵 절도범보다 상대적으로 약한 형량이 선고되는 경우가 아직도 다반사이고, 고위직이나 재벌 중범죄자마다 화려한 변호인단이 꾸려져 모두의 예상을 무색하게 하는 결과로 시민을 허탈하게 하는 경우를 목격하곤 한다. 이른바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옛일이 아니다.

많은 정부규제가 수범자를 고려한 예방목적이나 효율적 사회·경제시스템 설계의 관점이 아니라 비현실적 명분이나 정치적 목적에서 고안되고 함부로 형사처벌을 하도록 구성되니, 결국 전 국민이 잠재적 범죄자가 돼버렸다. 열심히 살아온 기업이나 시민들이 크든 작든 어느 규제인가는 위반하게 마련인 현실에서, 누구도 사정기관이 조사만 하면 걸리는 불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개혁은 무색해질 수밖에 없다. 수범자들도 규제 준수가 합리적 선택이 못된다. 오히려 위법과 합법을 넘나들며 이익을 극대화하고 혹시 걸리면 모은 돈으로 규제망을 찢거나 그물눈 사이로 빠져나오는 것이 최선의 전략으로 인식되곤 한다. 이처럼 준법노력 대신 적발확률 게임이 일상화된 사회에 커지는 것은 사회적 비용과 부정부패뿐이다.

대안의 하나는 솔직해지는 것이다. 우리의 실력과 현실을 가감없이 인정하고, 어느 정도의 문제는 사회적 비용으로 감수할 필요가 있다.
그 대신 범법자를 예외 없이 강력 처벌하고 피해자에게 충분한 보상해주면, 99%가 편안히 일하고 미래의 발전을 기약할 수 있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는 21세기 연말에, 아직도 1970년대식 한탄을 하자니 세월이 안타깝다.
내년, 눈높이는 조금만 낮추고 그 대신 그물을 강하게 조이면 좋겠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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