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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수입국 딜레마··· 한국의 미래는? [김성호의 Yo! Run! Check!]

[김성호의 Yo! Run! Check! 7] 피터 자이한, '셰일 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
[파이낸셜뉴스] 앉은 자리에서 천리를 본다는 말이 있다. 형주 작은 마을에서 중국 대륙을 삼분하는 미래를 구상한 제갈공명, 격변하는 시대를 인식하고 막부체제를 넘어선 세계를 꿈꾼 요시다 쇼인, 온라인과 모바일 기술을 결합해 스마트폰 혁명을 이룩한 스티브 잡스 같은 이가 그런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들을 현자라고 부른다.

누구나 현재에 터 잡고 미래를 향하지만, 어제의 틀에 갇혀 코앞의 내일을 모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26살의 요시다 쇼인이 쪽배를 타고 몰래 노를 저어 미군 함정에 올랐을 때, 그보다 10살 많은 흥선대원군은 나라 문을 걸어 잠그고 끝도 없이 돈을 찍어내 나라살림을 파탄으로 몰았다. 실리콘밸리의 작은 회사들이 눈 깜짝할 새 공룡으로 거듭났던 2010년대, 한국은 10여 년 전 이룩한 튼실한 IT인프라에도 대기업 위주의 성장정책으로 일관해 혁신의 적기를 놓쳐버렸다.

물론 꽉 막힌 꼰대만 있었던 건 아니다. 김구 선생은 <백범일지> 중 ‘나의 소원’이란 글에서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며 남다른 식견을 드러냈다. 안중근 의사 역시 뤼순감옥에서 저술한 미완의 논고 <동양평화론>에서 한·중·일 3국 공동체가 국제기구를 창설하고 경제를 통합하며, 집단안보 체제를 구축해 더 나은 미래를 그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당대엔 꿈꾸듯 아련했으나 돌아보면 지극히 현실적 구상들이다.

미래를 말하는 사람은 외면받기 쉽다. 온 산의 단풍이 물들어도 마당에 심어둔 나무 한 그루 변하는 걸 모르는 게 인간이다. 하지만 다가올 계절이 그저 나무를 물들이고 과실을 익게 하는 가을이기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셰일 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 김앤김북스.
셰일 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 김앤김북스.

■급변하는 국제정세, 미국이 처할 전략은?
사우디아라비아 유전 설비가 드론테러에 노출되고, 시리아에서 미군과 러시아군이 맨손 격투를 벌이며, 미국 드론이 이란 장군을 이라크에서 폭사시키는 일은 전에는 좀처럼 벌어지지 않던 사건들이다. 이들 사이에는 명확한 연관이 있는데, 오직 남보다 조금 더 앞을 내다보는 현자들만이 이를 하나로 꿰어 가치 있는 정보로 풀어낼 줄 안다. 우린 그들을 가리켜 전략가라 부른다.

<셰일 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는 지정학 전략가로 꽤나 명망이 있는 피터 자이한이 2017년 내놓은 책이다. 지난 수십 년 간 미국 보수 전략가가 쓴 책 가운데 수십 권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곤 했는데, 개중 특별히 명성 높은 이를 꼽자면 헨리 키신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정도일 것이다. 파터 자이한의 이 책은 여러모로 이들의 대표작과 견줄만하다. 충실한 정보와 폭넓은 관심으로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이 취할 미래전략을 확신에 가까운 신념 아래 예측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피터 자이한은 다른 전략가에 비해 정무적 경험이 일천함에도 데이터와 에너지 부문에 대한 지식이 뛰어나며, 이를 바탕으로 미국과 다른 여러 국가가 처할 수 있는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를 풀어놓는다. 그리고 그의 시나리오에서 가장 중요한 열쇠는 에너지, 특별히 셰일이다.

피터 자이한은 셰일가스가 국제정세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 예상했다. 그의 이같은 분석은 저유가 국면에 이르러 상당부분 오류가 생겼다. fnDB
피터 자이한은 셰일가스가 국제정세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 예상했다. 그의 이같은 분석은 저유가 국면에 이르러 상당부분 오류가 생겼다. fnDB

■눈여겨 봄직한 날카로운 정세분석
저자는 책에서 셰일 혁명이 미래가 아닌 현실로 자리 잡았으며, 그 결과 미국이 급격하게 외교정책을 수정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수정이라 함은 미국이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더는 수행하지 않는단 뜻이다. 셰일 혁명을 통해 에너지 자급자족을 이뤄냈고 천혜의 지정학적 조건과 안정된 인구구조를 가진 미국이 폐쇄적 초강대국으로 자리한다면, 남은 세계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혼돈의 장으로 돌입하리란 게 그의 예측이다.

그의 분석은 상당부분 설득력이 있다. 지난 수년 간 미국은 중동지역에서 꾸준히 군대와 자본을 북미대륙으로 철수시켜왔다. 국내 정치에 있어서도 돈과 위험을 떠안아가며 국제 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어쩌면 정말로 페르시아만과 터키, 시리아와 이라크, 일본과 한국에 주둔한 미군이 철수할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그 이후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일 수밖에 없다.

책은 러시아의 군사적 팽창과 이후 발생할 여러 시나리오, 싱가포르를 비롯한 동남아의 부상과 한·중·일 3국의 처절한 미래 등을 여러 근거를 들어가며 그려낸다. 일부 지나친 주장도 없지 않지만 대부분은 깊이 고심할 수밖에 없는 날카로운 분석이다. 특히 러시아가 인구정책 실패와 폐쇄성으로 팽창정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가정으로부터 시작된 여러 예측은 지난 3년 간 현실로 입증돼 가고 있다.

러시아 해군이 북극해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영국이 이에 대응해 노르웨이로 군대를 파병한 사실, 러시아가 시리아에 이어 베네수엘라에 정규군을 파병한 점 등이 모두 그렇다. 한때나마 브릭스(BRICS)의 일원으로 기대를 모았던 러시아가 지독한 경기침체로 고전하는 모습도 자이한의 분석이 얼마나 튼실한 근거 위에 서있는가를 반증한다.

한국은 중동을 비롯한 산유국으로부터 에너지를 수입해야 하는 제조기반 국가다. fnDB
한국은 중동을 비롯한 산유국으로부터 에너지를 수입해야 하는 제조기반 국가다. fnDB

■한국의 미래엔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
한국 독자들에겐 미국이 빠진 세계에서 동아시아가 겪게 될 위기가 충격적일 수 있겠다. 더 이상 안정적이지 않은 에너지수급과 주요 국가 사이의 분쟁 가능성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시나리오다.

누구도 미래는 확신할 수 없다. 돌아보면 당대 최고의 전략가들이 분석한 미래 역시 절반쯤은 비껴나갔다. 설득력 있는 근거로 세계 3차 대전을 피할 수 없으리라 주장한 이도 있고, 단일국가의 손에 패권이 주어지던 시기는 이미 끝났다고 주장한 이도 있다. 전 지구적 협력구조가 자리 잡는 날이 오리라는 주장이나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미국이 자리를 공고히 하리라는 주장 역시 있었다. 진실은 그 가운데 어디쯤에 있나 돌아본다.

중요한 건 현재를 바탕으로 미래에 대비하는 일이다. 한국은 여전히 70%를 훌쩍 넘는 원유를 페르시아 만 국가들로부터 들여와야 하는 불안정한 국가다. 제조강국의 지위를 버릴 수 없으며, 이를 유지하기 위해 다른 선택도 있을 수 없다. 기나긴 보급로를 독자적으로 확보할 역량이 없으므로, 미국이 떠난 세계에서 고전할 것임은 부인하기 어렵다.

책을 읽은 한국의 독자들에게 남겨진 숙제는 명확하다. 자이한이 예측한 끔찍한 미래를 바꿔내는 것이 한국과 한국인이 해야 할 일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부실해지는 이 길고 긴 책을 덮으며, 어쩌면 김구 선생과 안중근 의사의 전략이 여전히 유효한 세상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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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fnnews.com 김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