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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총리는 왜 저녁 기자회견이 많나 [도쿄리포트]

조은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1.14 14:45

수정 2021.01.14 15:27

"기사 작성 시간을 주지 않는다" 
"의원 내각제 특성...의회 보고 절차 후 오후 발표"
"NHK뉴스 시간대 공략...황금시간대 회견" 
횟수 자체는 빈번...한 두 달에 한 번 꼴 
지난 7일 오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로이터 뉴스1
지난 7일 오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로이터 뉴스1
【도쿄=조은효 특파원】 지난 13일 오후 7시 일본 총리 관저.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코로나19 방역 확산 저지를 위한 긴급사태 선언을 총 11개 광역 지역으로 확대한다는 내용을 발표하기 위해 단상 앞에 섰다.

앞서 지난 7일 도쿄권에 긴급사태를 선언했을 때에도 오후 6시에 관련 언론 메시지를 발표했다. 지난해 12월 4일 취임 두번째 기자회견도 오후 6시에 진행했다.

기본적으로 일본 정부 대변인격이자 총리의 비서실장 격인 관방장관이 오전과 오후, 하루 두 차례씩 정례 기자회견을 하고는 있으나, 최근 일본에서 자주 눈에 띄는 현상 중의 하나가 바로 총리 기자회견이나 주요 정책 발표가 이처럼 저녁시간 대에 이뤄진다는 점이다.

주로 대통령 기자회견 등의 시간대로 오전 10시, 11시를 선호하는 한국과는 좀 다른 모습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한국이 '아침형 기자회견'이라면, 일본은 '저녁형 회견'인 셈이다.
횟수만 놓고 따지면 일본총리 기자회견은 한 두 달에 한 번 꼴로 한국에 비하면 매우 잦다.

한·일 정상의 기자회견, 언론발표 시간대 차이는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지목된다. △의원내각제와 대통령제의 차이 △양쪽 모두 공히 구사하고 있는 정권의 미디어 전략의 차이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기사 쓸 시간을 주지 않는다"
일본 정가의 한 소식통은 "오후 늦게 기자회견을 하는 것은 기사 쓸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아베 정권 이전에도 오후 시간대를 선호했는지는 추가적인 확인이 필요하나, 적어도 아베 정권에서는 이런 경향이 두드러졌으며, 스가 정권에서도 이런 흐름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조간 신문의 경우, 저녁 시간대 기자회견은 물리적으로 추가 취재가 어렵다. 당일은 분석기사나 비판적 기사를 내보내기에 촉박하다. 당장은 총리나 장관 등이 발표하는대로 내보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사정은 방송도 마찬가지다. 오후 7시 기자회견 내용을 놓고, 즉각 후속 뉴스해설 방송을 내보내기가 어렵다.

지난 7일 오후 6시 도쿄권에 긴급사태를 선언하고 있는 스가 요시히데 총리의 모습이 TV화면을 통해 나오고 있다. 로이터 뉴스1
지난 7일 오후 6시 도쿄권에 긴급사태를 선언하고 있는 스가 요시히데 총리의 모습이 TV화면을 통해 나오고 있다. 로이터 뉴스1
이것이 정권의 일종의 '방어적 전략'이라면, '공격적 전략'도 있다.

일본 공영방송인 NHK뉴스 시간대에 맞췄다는 얘기가 있다. 일본 정부의 한 관계자는 "생방송으로 기자회견을 내보내려면, 오후 6시, 7시, 밤 9시 NHK뉴스 시간대를 활용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 시간대는 방송 뉴스 황금시간대다. 총리가 이 시간대 눈과 귀를 장악하게 되는 것이다. 코로나 확산과 같은 국가적 재앙, 위기 시, 국가 수반의 메시지는 귀기울일 수 밖에 없고, 존재감은 급상승하게 된다.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가 지난해 코로나 1차 유행기 당시, 거의 매일 오후 6시께 브리핑을 실시한 것도 뉴스시간대를 공략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일본의 한 방송사 기자는 "반드시 NHK뉴스 시간대에 맞췄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것 같다"면서 "다만, 오후 4시보다는 오후 6시, 오후 7시가 시선을 집중시킬 만한 좋은 시간대 아니냐"고 말했다.

한국의 경우, 통상적인 정책발표나 대국민 메시지는 대개 오전 10~11시께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한국 정부 전직 고위 공무원은 "조간 신문 기사 작성 시간을 감안해 관행적으로 그 시간대를 선호한 것으로 보인다"며 "한국의 풍토상 중요 정책 발표를 오후 늦게 한 경우는 그다지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고 설명했다. 물론, 한국도 피해가고 싶거나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주말을 앞두고 있는 금요일 오후 늦게 발표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대체로 토요일자 구독률이 낮고, 주말로 접어들면서 취재가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 사실상 한국의 뉴스 제공이 24시간 온라인 체제로 가속화되면서 민감한 뉴스 '금요일 오후 발표' 공식은 점차 약화돼 가는 모양새다.

지난 13일 총리관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스가 요시히데 총리. AP뉴시스
지난 13일 총리관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스가 요시히데 총리. AP뉴시스

■아침형 韓, 저녁형 日...의원내각제 특성
기자회견이나 주요 정책 발표 시간대 놓고만 보면, 한국이 '아침형'이라면 일본은 '저녁형'에 가깝다.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의 차이도 감안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오는 18일부터는 일본 정기 국회가 시작된다. 일본 총리는 이 기간 오전, 오후 낮시간대에 빈번하게 국회에 출석해 답변을 하게 된다. 예산안 관련 시정연설 등 외에는 대통령이 국회를 찾아가지 않는 한국과는 다르다.

총리가 국회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다보니, 기자회견, 주요 발표 시간대가 자연히 오후 늦게 저녁시간대로 밀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의원내각제 특성상 국회를 거쳐야 하는 절차가 많다. '관계부처 회의→중의원, 참의원 보고·인준→발표'를 한 셋트로 하루에 진행된다. 기자회견이 자연히 오후 늦은 시간대로 밀리는 것이다.

다소 특수한 경우로는, 심야에 정권이 출범한 지난 9월 16일을 예로 들 수 있다. 총리 지명이 이뤄진 당일, 오후 1시 이후 국회 총리 지명 선거를 시작으로 당수회담, 새 내각 조각 발표, 오후 5시 45분 일왕 주재 총리 임명식 및 각료 인증식→9시 총리 기자회견→10시 첫 각의 및 기념촬영→11시 각료 20명 릴레이 기자회견이 계속됐다. 그러다보니, 새벽 1시에 기자회견장에 서는 장관도 있었다. 새벽 기자회견은 당시에도 "심하다"는 등 말이 많았다.
의원내각제의 특수성과 지나친 절차주의의 비효율성이 결합됐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주요 부처들의 정책발표 전에 여당과의 협의, 즉 당정협의를 거치도록 돼 있는데, 대개 오전 7시에 국회에서 관련 회의 소집, 오후 10시 발표 등 좋게 말하면 일사천리, 나쁘게 말하면 번갯불에 콩구워 먹듯 진행한다.
'아침 번갯불 당정협의'로는 제대로 된 의견 수렴이 어렵다는 지적이 커지면서 최근엔 최소 전날에는 회의를 소집하고 있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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