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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전설 이상군 또 다른 전설 쓴다 [성일만 야구선임기자의 핀치히터]

성일만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1.25 14:42

수정 2021.01.25 16:59

북일고 이상군 감독
북일고 이상군 감독
이상군 북일고 감독(59)은 현역 시절 ‘고무팔’로 불렸다. 역대 단일 시즌 최다 투구 이닝 10위 안에 두 차례 이름을 올린 투수는 두 명 뿐이다. 최동원(1984년, 1986년)과 이상군(1986년, 1987년)이다.

이상군은 신인이던 1986년 243⅓이닝을 던졌다. 지난 시즌 200이닝 이상 던진 투수가 데스파이네(207⅔·KT) 한 명밖에 없음을 감안하면 대단한 기록이다. 이상군은 2년차인 이듬 해 246⅔로 이닝 수를 늘렸다.
승수는 18승(2세이브).

당시 절정에 올라있던 선동열(14승6세이브)이나 최동원(14승2세이브)보다 더 많은 승수였다. 신생팀 한화(당시엔 빙그레)에서 거둔 승수로는 놀랍다. 그러나 천안 북일고와 한양대 시절 이상군을 아는 야구팬들에겐 새삼스런 일이 아니었다.

이상군은 한화에서만 활약한 원 클럽 선수다. 딱 100승을 올린 후 은퇴했다. 이후의 지도자 생활도 잠시 LG에서 외도를 한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한화에서 보냈다. 지난해 말 한화 스카우트 총괄에서 물러났다.

한화와의 인연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11월 모교인 북일고 감독에 부임했다. 한화그룹 창업주 고 김종희 회장이 설립한 학교다. 이상군 김독은 김종희 회장의 장례식 운구에 참여했을 정도로 인연이 깊었다.

이상군 감독은 2017년 김성근 감독의 뒤를 이어 시즌 도중 감독대행을 맡았다. 대행으로 101경기를 치렀다. 성적은 43승1무56패. 0.430의 나쁘지 않은 승률이었다. 이후 다시 1군 투수 코치로 돌아왔다.

이상군 감독은 현역 은퇴를 두 번 했다. 1996시즌을 끝낸 후 마운드를 떠나 유학길에 올랐다. 1999년 다시 팀의 부름을 받고 선수 겸 코치로 복귀했다. 그해 30경기에 나와 5승1세이브로 한화의 첫 우승에 공헌했다.

2001년 두 번째 은퇴를 했다. 이번엔 정말 마운드를 떠났다. 그리고 40년 만에 돌고 돌아 북일고로 복귀했다. 선수가 아닌 감독으로. 이상군 감독은 3학년 때 신생팀 북일고를 전국 대회 정상에 올려놓았다.

당시 북일고는 창단 3년째로 전국 무대서 강호 대접을 받기 이전이었다. 1년 선배인 전 두산 베어스 김진욱 감독이 북일고 야구부 1회다. 전국 모든 고교 야구팀이 참가하는 봉황대기서 우승을 차지해 더욱 감격적이었다.

이상군 감독은 결승전서 배재고를 상대로 무실점 역투해 최우수 투수상을 수상했다. 모교 감독은 야구선수에게 희망이자 부담이다. 은퇴한 야구선수는 누구나 한 번쯤 모교 감독을 꿈꾼다. 하지만 마음의 짐은 되레 무겁다.

“최근 북일고 야구부가 침체된 점은 마음 아프다. 올해 좋은 선수들이 많아 기대해 볼 만하다. 이건호, 양경모 두 원투펀치가 튼튼하고, 지난해 이만수 홈런상을 수상한 박찬혁이 버틴 타선은 전국 최강 수준이다.”
박찬혁은 지난해 전반기에만 5개의 홈런을 때려 거포로 주목받았다. 메이저리그에서 안테나를 세웠다는 소문이 꾸준히 나돌았다. 후반기엔 어깨를 다쳐 원활하지 못했다.
올해는 크게 기대할 만하다는 게 이상군 감독의 귀띔이다. 북일고는 오는 3월 초 개최 예정인 ‘2021 전국 명문고 야구열전’에 출전한다.
강력한 우승 후보다.

texan509@fnnews.com 성일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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