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건·사고

인권위 "박원순 언동은 성희롱.. 피해자 주장 사실"

구자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1.25 20:21

수정 2021.01.25 20:21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이 25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전원위원회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뉴스1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이 25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전원위원회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뉴스1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 등을 조사해 온 국가인권위원회가 박 전 시장이 피해자에게 해온 성적 언동을 성희롱이라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25일 서울 중구 인권위 전원위원회실에서 제2차 전원위원회를 열고 박 전 시장 관련 의혹에 관한 직권조사 결과를 비공개로 심의한 결과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른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서울시 등 관계기관에 피해자 보호 및 재발 방지를 위한 개선 권고 등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서울시에 △피해자에 대한 적극적 보호방안 및 2차 피해 대책 마련 △성역할 고정관념에 기반한 비서실 업무 관행 개선 △성희롱·성폭력 예방 및 구제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지난해 7월 30일부터 이번 의혹과 관련해 서울시청 시장실, 비서실 현장조사를 비롯해 피해자 면담조사, 서울시 전·현직 직원 및 지인에 대한 참고인 조사, 서울시, 경찰, 검찰, 청와대, 여성가족부가 제출한 자료 분석, 피해자 휴대전화 디지털 포렌식 감정 등을 벌였다.


인권위는 먼저 서울시의 비서 운용 관행과 관련해 “피해자는 시장의 일정 관리 및 하루 일과의 모든 것을 살피고 보좌하는 업무 외에 샤워 전·후 속옷 관리, 약 대리처방이나 복용 챙기기, 혈압 재기 및 명절 장보기 등 사적영역에 대한 노무까지 수행했다”며 “서울시는 시장 비서실 데스크 비서에 20~30대 신입 여성 직원을 배치해왔는데, 이는 비서 직무는 젊은 여성에게 적합하다는 고정관념과 관행이 반영된 결과”라고 지적했다.

핵심인 박 전 시장의 성희롱 의혹에 대해서는 사실로 판단했다. 인권위는 “피해자의 휴대전화 디지털 포렌식 등 증거자료 및 박 시장의 행위가 발생했을 당시 이를 피해자로부터 들었다거나 메시지를 직접 봤다는 참고인들의 진술, 피해자 진술의 구체성과 일관성 등에 근거할 때 박 시장이 늦은 밤 시간 피해자에게 부적절한 메시지와 사진, 이모티콘을 보내고, 집무실에서 네일아트한 손톱과 손을 만졌다는 피해자의 주장은 사실로 인정 가능하다”며 “이 같은 박 시장의 행위는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성적 언동”이라고 설명했다.

인권위는 피해자가 비서실 다른 직원에 의해 성폭행을 당한 사건에 대해서도 서울시의 대응 및 피해자 보호조치가 미흡하다고 봤다.

인권위는 “피고소인을 다른 부서로 전보 조치했으나 피해자와 업무관련성이 있는 부서였고, 피고소인이 피해사실을 축소 왜곡해 외부에 유포했음에도 이를 방치했다”며 “서울시는 피해자가 사건에 대한 조사요구와 함께 2차 피해에 대한 조치를 요청했음에도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다만 동료 및 상급자들의 성희롱에 대한 묵인 방조 여부에 대해서는 피해자의 전보 요청이 박 시장의 성희롱 때문이라고 인지했다는 정황은 파악되지 않았다고 봤다. 박 시장의 피소 사실 유출에 대해서는 확인하기 어려웠다며 판단을 유보했다.

인권위는 “박 시장은 9년 동안 서울시장으로 재임하면서 차기 대권후보로 거론되는 유력한 정치인이었던 반면 피해자는 하위직급 공무원으로, 두 사람이 권력관계 혹은 지위에 따른 위계관계라는 것은 명확하다”며 “이러한 위계와 성역할 고정관념에 기반한 조직 문화 속에서 성희롱은 언제든 발생할 개연성이 있으며 본 사건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밝혔다.

이어 “박 시장은 여성 이권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건의 공동변호인단으로 참여했을 뿐 아니라 누구보다 젠더정책을 실천하려 했기에 그의 피소 사실은 그 자체로 충격이었다”며 “인권위는 이번 직권조사를 실시하면서 우리 사회가 성희롱 법제화 당시의 인식 수준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했음에 주목한다”고 했다.


아울러 “향후 인권위는 성희롱에 대한 실효성 있는 구제 뿐 아니라 차별적 환경과 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병행할 것”이라며 “피해자가 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다시 온전하게 자신의 삶을 회복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아낌없는 지지와 성원을 보내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solidkjy@fnnews.com 구자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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