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증세라는 ‘놀라운 상상력’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2.08 18:00

수정 2021.02.08 18:00

이낙연·홍남기는 함구
세금 반길 사람 없지만
누군가 터놓고 말해야
[곽인찬 칼럼] 증세라는 ‘놀라운 상상력’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따르면 나는 '놀라운 상상력'을 가진 사람이다. 증세를 서둘러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지난주 언론 인터뷰에서 "증세 논의는 불가능하다"며 "벌써부터 증세를 얘기하는 것은 놀라운 상상력"이라고 말했다.

앞서 이 대표는 국회 연설에서 "4차 재난지원금을 준비하겠다"며 "늦지 않게 충분한 규모의 추경을 편성하겠다"고 말했다. 더불어 '국민생활기준 2030' 비전도 밝혔다. 이낙연표 신복지국가 구상이다.
구체적으로 아동수당을 현행 7세에서 18세까지 확대하고, 몸이 아파도 생활비를 걱정하지 않도록 전국민 상병수당을 도입하자는 내용 등을 담았다.

그 연설을 들으며 나는 '놀라운 상상력'을 발휘했다. 재난지원금을 또 주고 아동수당도 더 주려면 아하, 증세를 하자는 말이구나 하고 말이다. 웬걸, 그날 연설에서 이 대표는 증세의 ㅈ자(字)도 꺼내지 않았다. 설마 재원 조달 없는 복지가 말짱 꽝이란 걸 이 대표가 모르는 걸까. 그럴 리가 있나. 역시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이 대표의 입을 막은 것 같다.

말해둘 게 있다. 나도 증세가 싫다. 사실 난 세금에 쌍심지를 켜는 사람이다. 연말정산 서류를 낼 때도 행여 기부금 영수증 하나라도 빠질까봐 보고 또 본다. 단돈 1원도 세금으로 더 내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세의 불가피성을 말하는 건 복지 때문이다. K자형 양극화를 누그러뜨릴 수 있는 방안은 폭넓은 복지가 유일하다. 일찍이 유승민 전 의원이 어록을 남겼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국민생활기준 2030'으로 이름 붙인 신복지국가 구상을 내놨다. /사진=박범준 기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국민생활기준 2030'으로 이름 붙인 신복지국가 구상을 내놨다. /사진=박범준 기자


민주당에도 나처럼 놀라운 상상력을 가진 이가 있긴 있더라. 3선 중진 이원욱 의원은 코로나 손실보상제 재원으로 한시적 부가세율 인상안을 제시했다. 지난달 하순 그는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2019년 기준으로 부가세 (세수)가 연간 70조원 정도 된다"며 "1% 내지 2%를 (추가로) 부과해 손실보상 기금을 마련하면 어떨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행 부가세율은 일률 10%다. 이를 몇 년 동안만 11~12%로 올려 보상금으로 활용하자는 얘기다.

정치인이 증세 얘기를 꺼낸 것도 모자라 부가세율을 올리자고 말한 게 놀랍다. 통상 증세 순서를 세목별로 나열하면 소득세-법인세-부가세 순이다. 먼저 부자, 대기업한테 세금을 더 걷어야 간접세인 부가세도 올리자는 명분이 서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 의원이 조금 걱정된다. 다음 총선까지 3년 더 남아 있는 걸 위로로 삼으시길.

이낙연 대표와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재정 씀씀이를 두고 한판 붙었다. 이 대표는 문재인정부 초대 총리 출신이다. 홍 부총리가 '전관예우'를 깡그리 밟았다. 이 대표가 화가 날 만도 하다. 하지만 내 눈에 두 사람의 갈등은 본질을 벗어난 느낌을 준다. 지금은 국채를 더 찍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증세를 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싸워야 할 때라고 보기 때문이다. 당장 국채 더 찍는 거, 불가피하다. 설훈 의원은 홍 부총리를 겨냥해 "서민의 피눈물을 외면하는 곳간지기는 자격이 없다"고 통박했다. 맞다.
자영업자, 소상공인에 대한 보상은 국가의 책무다.

동시에 국가 미래를 염려하는 정치인, 책임 있는 관료라면 증세를 말해야 한다.
그래야 안정적인 보상, 지속가능한 복지의 문이 열리기 때문이다. 이 대표와 홍 부총리가 증세에 입을 열길 바라지만 꼭 다물면 도리 있나. 선거와 무관한 나라도 계속 '놀라운 상상력'을 발휘하는 수밖에.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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